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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에서 벌어진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벌어졌던 곳은 본점 기업개선부다. 이 부서는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한 기업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계약금 등을 관리했다. 당시 범행을 저지른 A씨가 횡령한 금액은 우리은행이 채권단을 대표해 관리하고 있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 등이었다.

우리은행 뿐만 아니라 다른 시중은행 역시 워크아웃 기업을 관리하는 부서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해당 부서에서 횡령 사고가 발생한 건 우리은행 뿐이다. 횡령을 저지른 개인의 문제도 크지만, 이런 횡령을 계획할 수 있을 정도로 내부통제가 허술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0년 동안 동일 부서에서 근무한 직원이 명령휴가 대상에 선정되지 않았거나, 허위 공문서를 적발하지 못하는 등 인사·공문관리 등 내부통제 전반에 구멍이 뚫려있었다는 지적이다.

13일 금융권과 우리은행 700억원 횡령범죄 관련 1심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1년 1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우리은행 내에서 기업개선부 업무와 관련된 모든 계좌와 연결된 통장, 해당 통장의 돈을 인출하기 위해 필요한 도장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2013년 1월부터 2017년 6월까지는 기업개선부 과장(심사역), 2017년 7월부터 2018년 7월까지는 기업개선부 차장(심사역)으로 근무했다.

이처럼 약 10년 동안 동일 부서에서 동일 업체를 담당했지만 명령휴가 대상에 단 한 번도 선정되지 않았다. 명령휴가는 금융사고 발생 우려가 큰 업무를 수행하는 임직원에게 회사가 불시에 휴가를 가도록 하고, 이 기간 동안 해당 직원의 금융거래 내역과 취급 서류 등을 점검하는 제도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이 통장과 직인 관리자를 분리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시중은행들이 통장 관리와 인감 관리, 자금 결제 등으로 업무를 분리한 것과 달리 우리은행은 A씨에게 통장과 인감 관리를 모두 맡겼기 때문이다. 실제 A씨는 첫 횡령을 벌인 2012년 출금전표 적요란에 ‘법원공탁금 납부’ 취지로 기재한 후, 보관하고 있던 기업개선부 도장을 사용했다. 이후 출금전표와 보관하고 있던 계좌와 연결된 통장을 제시, 계좌에서 자기앞수표를 출금했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횡령을 할 수 있는 구조였던 셈이다.

당시 우리은행 횡령사고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한 금융감독원은 사고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A씨가 10년 이상 동일 부서에서 근무하면서도 명령휴가 대상에 한 번도 선정되지 않았던 점, 파견 허위보고 후 무단결근을 했던 것을 파악하지 못한 점 등 인사관리가 부실했다고도 지적했다. 또한 통장과 직인 관리자가 분리돼 있지 않아 정식결재 없이도 직인을 도용할 수 있었다고 봤다.

다른 시중은행을 살펴보면 국민은행은 ‘기업경영개선부’, 신한·하나은행은 ‘여신관리부’, 농협은행은 ‘기업개선센터’가 워크아웃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민은행 기업경영개선부에서는 자금관리, 통장관리, 인감관리, 자금결제 등으로 직무를 분리했다. 자금을 인출할 때에는 금액에 관계없이 거래 전 건에 대해 책임자가 승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특히 자금 자금 담당자는 명령휴가 의무대상자로, 연 1회 점검이 진행된다.

신한은행은 기업여신지원부와 여신관리부 등을 통해 워크아웃 기업을 관리한다. 기업회생 차주가 변제를 요청할 경우 기업여신지원부에서 공문으로 여신관리부에 의뢰를 하고, 여신관리부에서는 이 공문의 의거해 업무 처리를 하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최종적으로는 기업여신지원부 업무 담당자가 처리 결과를 다시 점검하는 구조다. 업무와 계리 처리가 이원화돼 있어 개인이 횡령할 수 없도록 했다. 신한은행은 담당 업무와 관계없이 전 직원이 명령휴가 대상이기도 하다.

하나은행 여신관리부 역시 통장관리, 인장관리, 자금인출 업무를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또한 위험직무에 근무하거나, 동일 직군에 2년 이상 근무한 직원의 경우 명령휴가 대상으로 선정된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직원은 일반 휴가 기간 동안 특명감사를 진행한다.

농협은행의 경우 채권 관리를 위한 별도의 통장을 개설하지 않고, 담보·채권 매각시 계약금은 사무소 통장으로 수령한다. 업체 관리자와 사무소 통장 관리자, 법인 인감 관리자, 자금결제 담당자 등 직무를 모두 나눠 운용하고 있다. 사무소 통장에서 자금을 출금할 때에는 금액에 상관없이 자금집행 요청서를 작성해 상급자 결재를 받과 자금 결제 담당자에게 집행을 요청하는 구조다. 이후 자금결제 담당자가 요청서 내용에 따라 해당 자금을 이체한다. 이후에는 준법감시담당자가 통장과 사무소 보유 계정의 거래내역을 일·월 단위로 확인하는 방식을 거치게 된다.

우리은행의 경우 인사 관리와 업무 분담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횡령 사고가 벌어졌다는 지적이다. 이 뿐만 아니라 A씨가 위조 문서를 수차례 활용했음에도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전자결재가 아닌 수기결재문서를 통해 결재를 받고, 전산등록도 하지 않으면서 결재 전 사전확인이나 사후점검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액의 입출금 거래가 이상거래 발견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점도 장기간 횡령이 벌어지게 만든 원인으로 지적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다른 은행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라며 “사실상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700억원대 횡령 사고 이후 인사 관리 제도를 개선하고, 통장과 직인 관리자를 분리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직원이 장기근무를 하지 않도록 인사관리제도를 개선했다”며 “더불어 ‘당행보관통장 관리책임자’를 임명하고 겸직금지 조항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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