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와 관련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빛은 어둠이 있기에 또렷하고 선명한 윤곽을 띄고, 어둠은 빛이 있기에 그 깊이가 더욱 짙어진다. 즉, 빛과 어둠은 서로 뒤엉키며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보호자'(감독 정우성)는 경계가 불분명한 빛과 어둠을 닮은 ‘평범함’을 원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호자’는 10년 만에 출소한 ‘수혁’(정우성)은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조직을 떠나 평범하게 살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영화의 처음은 출소한 수혁이 허허벌판 같은 삭막한 모래 위에서 조직에서 전달한 차와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이다. 고개를 푹 누른 녹색 후드집업에서 말끔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수혁. 마치 본능이 꿈틀대던 한 마리의 야수에서 규칙과 질서가 정립된 세계 안으로 진입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후, 수혁은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자신의 아이가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평범한 삶을 원하게 된다.

평범함은 주관적이며 경계를 짓기 어려운 영역이다. 오죽하면, 조직의 보스인 응국(박성웅)은 조직을 나가서 평범해지고 싶다는 수혁에게 “우린 뭐 안 평범해?”라며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보이겠는가. 더욱이 조직의 이인자였던 성준(김준한)의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은 수혁의 평범한 삶에 큰 걸림돌이 된다. 성준의 실체 없는 감정은 수혁이 구축하고자 한 평범한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성준은 킬러들을 고용해서 수혁을 죽이려고 한다.

고용된 킬러 우진(김남길)과 진아(박유나)는 길들지 않은 들개처럼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쾌락을 추구한다. 특히 교회에서 처음 등장한 우진은 고해성사한다는 명목하에 텅 빈 눈으로 목사를 바라보지만, 어느 순간 “지옥은 매일 불타고 있다면서요”라며 생기 넘치는 눈동자를 보여준다. 교회를 폭발시키는,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파멸시키며 등장한 킬러들은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신선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들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의 ‘보니 앤 클라이드’처럼 폭주하고 사회 바깥에서 삶을 영위하며 쾌락을 추구한다. 우진과 진아는 오토바이를 몰고 끊어진 도로 끝까지 달려가는 위험천만한 모습부터, 못이 든 총을 들고 추격하면서 순수하게 재미를 즐기는 광기를 보여준다.


배우 정우성의 첫 연출 데뷔작 ‘보호자’는 신인 감독의 영리함과 촘촘하게 30년 차 배우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수혁의 전사를 보여주는 액션신에서 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수혁에 의해 빛이 차단된 사설 도박장 안의 사람들은 아비규환 상태다. 반면, 수혁은 기다란 칼에 조명을 붙여 자유자재로 사람들을 죽이며 이동한다. 깊게 내려앉은 어둠 아래 수혁의 칼은 움직임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묘사된다. 감독 정우성은 ‘보호자’의 곳곳에 일종의 상징을 배치해두며, 기존의 삶에서 바깥으로 이탈하려는 과정을 그려낸다.

영화의 구조는 수혁의 딸 인비(류지안)는 진아에게 의해 납치당하고, 우진은 수혁에 의해 끌려다니는 것으로 설계됐다. 각자의 보호자가 뒤바뀐 상황에서 인비와 우진은 폭력에 쉴 새 없이 노출된다. 특히 수혁의 딸 인비는 버려진 관람차 안에 갇히지만, 이내 문을 열고 나온다. 하지만 문밖에는 살기를 뿜어내는 개가 버티고 있다. 사실 인비는 아빠라는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마주한 이 상황이 난처하고 당혹스러울 뿐이다.

이 작품에서 물은 수혁이 기존의 폭력을 씻어내고 평범함으로 가기 위한 정화하는 성수처럼 보인다. 후반부, 수혁은 인비를 마주하기 전에 상처를 물로 씻어내고 폭탄으로 인해 건물이 폭파하자 인비를 안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붉은색 화염을 토해내는 폭발에서 물은 이 부녀를 지키는 차단막이자 보호자다.

‘보호자’는 다양한 상징과 빛과 어둠을 사용한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며 눈길을 끌지만, 동시에 과연 수혁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에 대한 목적성 역시 불분명하다. 10년 만에 출소해서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고 그를 지키려고 하지만, 부성애보다는 어떤 임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평범함으로 향하는 버거운 임무에 공감보다는 피로가 느껴진다. 극 중에서 수혁이 성준을 찾아가 딸 인비를 돌려달라고 하며 선보인 로비에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자동차 액션신처럼 시원한 쾌감보단 어지러움만이 더해질 뿐이다. 중심이 불분명한 탓에 수혁의 행보에 발맞춰 따라가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수혁이 지켜주고자 한 것은 처음 딸을 본 발레학원에서 선명한 빛이 내려앉은 인비의 환한 표정이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수혁은 평범함 안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했다. 화려한 액션이나 상징이 아닌 인비와의 연대가 평범함으로 가는 첫 단추였을 것이다. ‘보호자’는 평범해지고자 한 수혁의 이야기를 다뤘다지만,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정우성 감독의 도전에는 응원을 보내는 바다. ‘성난 황소’와 같은 몸짓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정우성의 말처럼 야성과 본능이 꿈틀대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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