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사건팀 박지영‧박지영 기자] #. 직장인 이모(26)씨는 ‘기본 전화 멘트’를 적어놨다. 통화 전 ‘무더운 여름에 고생이 많으시다’처럼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인삿말부터 상대방의 반응을 예상해 해야 할 답변 등이 담겼다. 전화 통화를 위한 일종의 ‘시나리오’다.

이모씨는 “전화를 하다 실수해서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렵다”며 “전화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동시에 다음 질문을 같이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모씨는 친구들과도 웬만하면 전화를 피하고, 메신저 앱으로 대화한다고 했다.

2030대들 사이 ‘콜 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가 번지고 있다. 콜 포비아란 콜(전화)과 포비아(공포증)가 합쳐진 단어로, 통화를 할 때마다 불편과 불안감을 느끼고 급기야 전화를 피하기까지하는 증상을 뜻한다. 최근 가수 아이유 또한 ‘콜 포비아가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콜 포비아는 2030세대를 넘어 회사에서 관리자급인 4050세대도 느끼고 있다.

지난해 9월 알바천국이 MZ세대 2735명을 대상으로 콜 포비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명 중 3명이 콜 포비아를 겪는다고 답했다. [알바천국 제공]

직장인 전모(27)씨의 증상은 더 심하다. 통화가 두려워 회피를 선택하는 것이다. 전모씨는 “친한 친구들과 통화하는 것도 선호하지 않아서 전화가 와도 못 본 척 안 받는 게 대부분”이라며 “통화는 목소리만으로 대화가 진행돼 대화 흐름, 상대방의 반응 등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불편해 한다.

실제 지난해 9월 구인구직포털 알바천국이 MZ세대 2735명을 대상으로 콜 포비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61.4%가 가장 선호하는 소통 방식으로 문자, 메신저 등 텍스트를 꼽았다. 통화를 선호한다는 답변은 18.1%에 그쳤다. 29.9%는 콜 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현상은 2030세대에서에 국한되지 않는다. 업무 메신저 ‘잔디’를 활용해 직원들과 소통하는 스타트업 대표인 박모(48)씨는 젊은 직원들과 일하면서 통화가 불편해졌다고 한다. 박모씨는 “동료들이 전화를 잘 안하니까 자연스럽게 메신저에 익숙해지게 됐다”면서 “전화를 급할 때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오히려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가슴이 섬찟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콜 포비아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030대는 핑거 제너레이션(Finger Generation), 떰스 제너레이션(Thumbs Generation)이라고 불리는 등 문자나 이모티콘을 통한 소통에 익숙해져 있다”면서 “코로나19를 거치며 비대면 의사소통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전화 통화에 대한 불편함과 어색함을 넘어 일종의 거부감까지도 느끼는 것”이라고 짚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또한 “콜 포비아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거치면서 비대면에 익숙해졌다”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콜 포비아가 퍼지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콜 포비아로 이어진다는 해석도 있다. 성 교수는 “전화 통화를 하면 아무래도 안부를 묻는 등 구체적으로 상대에 대한 상태를 물어보게 된다”면서 “문자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문자가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이면에는 사람들 사이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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