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이미 경제 위기에 처한 중동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나빠진 경제가 극단주의 세력의 득세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미래투자 이니셔티브(FII) 회의에서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WB) 총재는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일을 포함해 지정학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결국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면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만큼 하나에 집착하며 다른 것을 무시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역시 이날 열린 블룸버그 행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경제에 미칠 경향에 대해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전쟁이 확산되면 당연히 더 중대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지난 9월 보고서에서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등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세 국가가 ‘사회정치적 안정’이 훼손될 정도로 경제적 압박이 심각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지난 4월 IMF는 이집트 정부의 올해 자금 수요가 국내총생산(GDP)의 35%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높은 곡물가 등으로 빈곤층에 대한 식량 지원에 들어가는 돈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5일 이집트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 B1에서 Caa1으로 1단계 하향 조정했다. 1600억달러에 달하는 부채의 상환능력이 악화되고 있고 외화 부족 사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은 이집트의 경제 위기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을 가자지구에서 영구적으로 추방할 것을 우려해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난민이 이집트에 유입되면 이들에 대한 식량과 주거 지원 등의 비용이 이집트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이집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줄어든 점도 잠재적인 경제적 손실이라고 AP통신은 지적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레바논의 경제 규모는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절반으로 축소됐다. 1997년부터 달러당 1500레바논파운드로 고정돼 있던 환율은 현재 달러당 9만파운드로 치솟았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송금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군인들의 월급은 미국과 카타르의 지원금으로 충당되는 형편이다.

레바논 정부는 지난해 4월 IMF와 구제금융 패키지에 잠정 합의했지만 IMF가 지원 요건으로 내세운 개혁을 대부분 이행하지 않았다. IMF는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레바논의 공공부채는 GDP의 550%에 육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 남부 국경에서 충돌하는 등 전쟁이 레바논을 뒤덮을 조짐을 보이자 각국 대사관은 자국민에게 철수를 경고하고 항공사들은 레바논 행 항공편을 취소했다. 이같은 상황은 그나마 레바논 경제의 마지막 생명선으로 여겨지던 관광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지원하고 있는 요르단 역시 최근 경제 성장 둔화와 외국인 투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부채 상황은 이집트 보다 나은 형편이지만 실업률은 두자릿수에 달한다.

전쟁으로 이들 국가의 경제가 악화되면 중동 지역의 분쟁은 더 심화될 수 있다. 곡물가 급등으로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리비아와 이집트 등에서 무슬림 형제단 등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내전이 발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 미국 재무부 관료였던 크리스토퍼 스위프트 국제 변호사는 “정치와 안보는 경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면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할수록 이 지역의 나쁜 행위자들이 상황을 휘젓기가 더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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