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내 유일하게 불이 커져있는 알 시파 병원. 이스라엘군은 병원 인근 건물에 폭격을 가한데 이어 의사와 환자들에게 병원을 비우라고 통보했다.[EPA]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집단매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는 슬퍼하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묘지는 꽉 차서 자리가 없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오마르 디라위(22) 팔레스타인 사진기자는 지난 22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 32명을 들판에 매장했다. 장례 절차 역시 지키지 못했다.

다라위의 친척들은 가자지구 북쪽을 비우라는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에 따라 더 남쪽에 있는 그의 집으로 피신했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한날 한시에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고, 병원과 영안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가자 지구에선 제대로 된 장례는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가하면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가자지구의 알 시파 병원 인큐베이터에는 미숙아 130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죽어가는 산모들을 제왕절개해 의사들이 구해낸 아이들이라고 밝혔다. 알 시파 병원의 한 직원은 “이 아이들은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고 NYT에 전했다.

영국계인 가산 아부 시타 의사는 알 시파의 화상병동에 있는 아이들 다수가 ‘전쟁고아’라고 CNN에 밝혔다. 그는 “내가 치료한 아이들의 절대 다수는 친척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며 “이 아이들의 유일한 죄는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알 시파 병원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비롯해 6만명 이상의 부상자가 머물고 있지만 이스라엘군은 이곳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지하 지휘소 거점이라고 지목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하마스가 알 시파 병원에서 로켓 공격을 지휘하고 군사적전을 통제하고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지상전 고삐를 더욱 옥죄면서 병원을 비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BBC에 따르면 가자시티의 또 다른 병원인 알 쿠드의 의사와 환자들은 퇴거할 것을 지시받았다. 이미 이 병원 인근 건물들은 폭격을 받아 무너졌으며 이때 발생한 자욱한 먼지와 연기 때문에 환자들이 질식을 염려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생활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실시간으로 전쟁 상황을 전하는 기자들도 29명이 숨졌으며, 팔레스타인인 민간인 사망자 수는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일부터 이스라엘이 34시간동안 가자지구의 전화와 인터넷 등 통신을 완전히 끊으면서 가자지구의 일상을 떠받치던 나름의 질서마저 무너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이집트에서 오는 인도주의 물품을 보관하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의 창고가 주말 사이 습격당했고 밀가루와 위생용품 등이 약탈당했다.

토마스 화이트 UNRWA 가자지구 담당 국장은 “사람들은 겁을 먹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며 “전화와 인터넷 통신 회선이 끊어지면서 긴장과 두려움이 더욱 심해졌고, 사람들은 가자지구 안에 있는 가족들과도 단절되어 혼자 있다고 느끼면서 혼란이 증폭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21일 이후부터 총 약 117대의 트럭, 즉 하루 평균 13대의 트럭이 가자지구에 구호물자를 나르고 있지만 현지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쟁 이전에 가자지구로 들어오던 트럭은 하루 500대에 달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가자지구에 대한 구호물자 전달이 어떤 식으로든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카림 칸 ICC 검사는 이날 가자지구로 통하는 이집트 라파 국경을 방문해 SNS 영상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칸 검사는 민간인에게는 국제인도법에 따른 권리가 존재한다면서 “이러한 권리가 축소되는 경우 로마규정에 따라 형사적 책임까지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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