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국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금융당국의 전방위적인 가계대출 관리 압박이 강화되는 가운데, 유동성 공급에 애를 먹고 있는 중소기업(이하 중기)들이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이 공언한 ‘중기 유동성 공급’ 강화 방침이 가계대출 억제 기조와 충돌하면서, 대출 증가세 관리에 집중하려는 은행들이 오히려 중기 대출 공급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과 무관하게 유동성 공급이 필요한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자금 공급은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은행권을 독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미 은행권의 기업대출 영업이 사실상 대기업에 치우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은행권의 기조가 중기 유동성을 위축, 연쇄 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전반적인 경기 침체, 유동성 위축 등의 여파로 중기(中企) 대상 대출 공급이 급증한 가운데 은행권의 중기 대출 관리가 본격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체율 등 건전성 부문에서 중기 대상 대출이 고스란히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상황인 만큼, 전반적인 중기 대출 문턱을 높여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증가 폭 키워온 중소기업 대출

최근 중기 대출의 경우, 전반적인 기업대출 증가세와 맞물려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 예금은행에서 공급된 기업대출 누적 잔액은 1238조2000억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 대상 대출 잔액은 994조2000억원으로 전체 기업대출 잔액의 약 80%의 압도적 비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중기대출의 월별 증가세다. 한은에서 집계하는 세부 대출 부문(가계 대출, 주택담보대출, 대기업 대출 등) 가운데 지난 상반기를 기점으로 매월 증가폭을 키워가고 있는 영역은 중기 대출이 사실상 유일하기 때문이다.

실제 중기대출의 경우 매월 증가 폭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전월 대비 3조1416억원 늘어났던 은행권 내 중기대출은 이후 △7월(4조9210억원) △8월(5조2384억원) △9월(6조4232억원) 등 3개월 연속 증가폭을 키우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일련의 추세를 감안하면 이번 달 공급된 중기대출 규모까지 합산한 10월 누적 중기대출잔액은 1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은행권 내에서도 가장 많은 중기대출을 공급 중인 주요 시중은행에서도 더욱 두드러진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둔화하면서 이를 상쇄하기 위한 전략의 목적으로 기업대출에 영업력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공급된 기업대출 잔액은 761조894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말(703조6745억원) 대비 약 8.3%(58조2195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특히 비교 시점을 지난 9월 말로 좁혀보면 증가세는 더욱 눈에 띈다. 지난 9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756조3310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26일 기준 기업대출 잔액과 비교하면 불과 한 달도 채 안돼 기업대출이 5조5600억원 가량 늘어난 셈이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은 625조9800억원으로 전년 말(598조2140억원) 대비 27조7660억원(4.6%) 가량 늘어났다. 물론 같은 기간 30%에 육박하는 증가세를 보인 대기업 대출(105조4610억원→135조9140억원)과 비교하면 다소 낮은 수준이지만, 대출 총량으로는 여전히 전체 기업대출의 82% 비중을 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디자인=김민영 기자.
디자인=김민영 기자.

‘4분기 중기 대출 문턱’ 높아진다

문제는 이같은 중기 대출의 급증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은행권이 중소기업 대상 대출 심사 문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은행채 발행 재개 등으로 다시 은행권이 ‘자금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같은 은행들의 깐깐한 대출 심사 예고는 자칫 중기 대상 유동성 공급의 위축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4분기 대출태도지수(전망치)는 중소기업의 경우 ‘마이너스(-)6’으로 집계됐다.

‘대출행태 서베이’라는 이름의 해당 조사는 분기마다 국내 204개 금융기관 여신업무 책임자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통상적으로 수치가 0을 기준으로 ‘마이너스(-)’가 커질수록 은행 대출 심사를 더욱 깐깐하게 하겠다는 응답자가 많아진다는 의미다. 반대로 ‘플러스(+)’의 경우에는, 은행 대출 문턱을 낮춰 대출 공급을 늘리겠다는 응답자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이같은 수치는 코로나19 등으로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지난 2021년 이후 가장 큰 마이너스 수치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분기 조사 당시 ‘플러스(+)18’을 기록했던 중기대출태도지수는, 이후 총 11번의 조사 중 7번이 ‘플러스’ 또는 중립을 의미하는 ‘0’을 기록했다. 이전 최저 수치는 지난 2021년 3분기, 2022년 3분기 기록한 ‘마이너스(-)3’ 이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코로나19 금융지원 종료 등 리스크 요인을 고려하면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중기 대출 관리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며 “기존 신용평가 모델을 고도화해 대출 심사 과정에서 향후 부실 위험도 등을 예측, 대출 공급 과정에서부터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은행권에서 공급한 중소법인 대출의 연체율은 0.59%,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0.21%p, 0.3%P 씩 악화된 수치인데, 특히 은행권 전체 평균 연체율(0.43%)을 웃도는 수치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 사진=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갈무리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 사진=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갈무리

은행권 “건전성 관리 강화, 대출 공급은 지속”

다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은행권 내 일련의 움직임이 중소기업‧소상공인 등 취약차주 대상의 금융공급 확대를 공언한 금융당국의 입장과 정면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은 그동안 가계대출 관리와는 별개로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 대상 금융 지원은 지속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최근 김주현 위원장은 국정감사 현장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 지원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으면 그 어려움을 넘기기 쉽지 않다”며 “금융사들도 이러한 취약차주 대상 금융지원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발언, 은행 등 민간 금융사의 적극적인 참여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1년여 가까이 지속해온 은행채 발행 규제 조치를 종료하기로 한 결정 역시, 중기대출 공급 확대라는 당국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은행채 발행 재개로 예금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인상을 막고, 나아가 조달된 자금을 기반으로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취약차주 금융 지원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이같은 중기대출 관리 조치가 대기업 위주로 치우친 최근 기업대출 영업 기조와 맞물리면서 중기 유동성 악화, 이에 따른 리스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실제로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 3분기 기준, 전년 대비 대기업 대출 증가폭은 모두 두자릿 수대를 기록했다. 반면, 중기대출의 경우 같은 기간 1~2%대 성장에 그쳤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 문턱을 높이는 조치에는 신규 대출 심사 강화뿐 아니라, 현재 공급된 중기 대출에 대한 연체 등 건전성 관리 강화도 포함돼 있다”며 “대기업 대출 확대와는 별개로 중기 대출의 부실 관리는 지속하되, 공급 자체는 차질 없이 지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 또한 “중소기업 대출 중심으로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어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다만, 금융당국이 전개하는 중기 대상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등 정책 기조에는 적극 발맞출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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