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전경. [대법원 제공]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과장으로 승진한 후 업무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제약사 소속 수의사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압박이 아니라 개인의 완벽주의 성향이 원인”이라며 유가족의 청구를 거부했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망인의 완벽주의 성향이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가 결합해 우울증을 악화시켰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13부(부장 박정대)는 수의사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A씨 유족) 승소로 판결했다.

수의사 A씨는 2016년 5월부터 한 대형 제약사에서 근무했다. 원래 업무는 양봉·축산 관련이었지만 2020년 1월 과장으로 승진하며 반려동물 신제품 개발 업무를 추가로 담당하게 됐다. A씨는 정신 질환 관련 과거 병력이 없었지만 이때부터 우울증을 겪고,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A씨는 사망 하루 전, 가족에게 “성과를 내지 못해서 더 이상 승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견디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하루 수면 시간이 2~3시간밖에 되지 않았고, 회의 중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 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2020년 12월, 본인과 자녀의 생일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이 A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자, 유족은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재판에서 유족 측은 “망인이 과장으로 승진한 이후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업무상 재해가 맞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당시 A씨가 회사 내부의 평가 저하와 승진 기회의 상실 등을 우려하며 심각한 좌절감과 무력감, 수면장애 등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망인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 성향과 결합해 우울증을 악화시켰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망인의 극단적 선택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동기나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직 이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이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해 2심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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