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야구사랑’ 故 구본무 회장…29년만에 LG家 염원 풀어

LG家 상속분쟁과 대비… “구본무 유지 상관없이 리셋” 녹취록까지 등장

회사 내에서 재산을 두고 다투지 않는 게 가풍…고인 유지 따라야

故 구본무 회장 1주기 추모식에서 구광모 (주)LG 대표와 부회장단이 헌화를 하고 있는 모습ⓒLG 故 구본무 회장 1주기 추모식에서 구광모 (주)LG 대표와 부회장단이 헌화를 하고 있는 모습ⓒLG

장면1) 지난 13일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LG가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선수단은 30년 가까이 기다려준 팬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LG 팬들은 “무적 LG”를 연호하며 챔피언 세리머니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팬들은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산이자 야구 사랑을 대변하는 롤렉스 시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시계는 구 선대회장이 1998년 해외 출장을 갔다가 LG의 세 번째 우승을 기원하면서 산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가격이 8000만원쯤 하는 고가시계다. 고인은 이 손목시계를 구단에 전하면서 “다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게 이 시계를 선물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이 시계는 25년 동안 잠실구장 내 구단 사무실 금고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 롤렉스 시계는 결국 LG 주장 오지환에게 돌아갔다.

장면2) 16일 LG그룹의 상속 재판이 열리는 서울서부지법. 구광모 LG그룹 회장 모친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구연수씨 측은 구 선대회장이 남긴 ㈜LG 지분 11.28%를 법정 상속 비율(유류분)에 따라 다시 나누자며 지난 2월 구 회장에게 상속회복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재판에선 LG그룹 가족 간 대화를 담은 녹취록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 증인으로는 지난 재판과 같이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 사장이 출석했다. 하 사장은 LG 일가의 재산 관리부터 주식 매입 등에 관여해 온 인물이다. 구광모 회장 측은 “원고(세모녀)들은 유언장이 있다는 말을 믿고 상속에 합의했는데 나중에 유언장이 없다며 소송한 상황”이라며 “원고 구연경 대표가 아빠의 유지랑 상관없이 분할 협의는 리셋해야 한다고 증인 앞에서 얘기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하 사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 피고 측이 “원고 김영식 여사가 ‘연경이가 아빠를 닮아서 전문적으로 할 수 있다. 자신 있게 잘할 수 있다’며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받고 싶다고 얘기했냐”고 물었고 하 사장은 “맞다”고 답했다. 대화 현장엔 구 대표 배우자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도 동석한 것으로 기록됐다.

한 LG야구팬이 쓴 피켓 ⓒMBC캡쳐 한 LG야구팬이 쓴 피켓 ⓒMBC캡쳐

곱씹어보면 가슴 한구석이 아주 깊이 가라앉는 느낌이 드는 두 장면이다.

고인의 유지(遺志)를 받든 선수단과 유산을 챙기려는 가족들의 그 극명한 대비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죽음은 그 사람이 머물렀던 공간, 시간도 함께 앗아간다. 고인의 유지를 따르는 건 산 자의 몫이다.

변화와 단절, 안정과 계승 모두 산 자의 일이다. 다만 유지의 계승은 고인을 우리 곁에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이다. 실제 LG가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야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구본무 회장님이 하늘에서 정말 기뻐하시겠다”, “오늘을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겠다”는 추모의 글들이 이어졌다. LG팬들은 구 선대회장의 구단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LG의 장자승계 원칙은 그룹의 전통이자 구 선대회장의 유지다. LG는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 당시부터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에 이르기까지 장자승계 원칙을 이어왔다.

이런 뜻으로 구 선대회장은 2004년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입적했다. 재계에서는 LG가 전통적으로 오너 집안의 딸들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고 장자승계 원칙을 이어왔기 때문에 구 회장의 양자 입적을 후계자 낙점으로 받아들여왔다.


그런데도 세 모녀는 구 선대회장의 뜻을 흔들고 있다. 그것도 상속 직후가 아닌 4년여가 흐른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집안 내, 회사 내에서 재산을 두고 다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가풍도 무시됐다. 재계 일각에선 소송 당사자인 세 모녀 배후에 숨어있는 친인척이 소송을 이끌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세 모녀 측이 LG 주력 계열사를 요구하는 선에서 소송을 접는 조정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앞서 세 모녀는 소송 제기 당시 “경영권 분쟁을 위한 것이 아닌, 상속 과정에서 있었던 절차상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민들에게 사실과 동떨어진 설명을 했던 셈이다. 구 선대회장이 “아빠의 유지랑 상관없이 분할 협의는 리셋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아쉽게도 고인의 유지(遺志)를 받드는 일은 남은 이들의 의지다. 하지만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유족들의 마땅한 도리다. 뜻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다.

구 선대회장이 그토록 염원하던 LG 트윈스 세 번째 우승은 2대 구단주인 구본준 LX그룹 회장 시절을 거쳐 3대 구단주 구광모 LG그룹 회장 시절에 와서야 현실이 됐다. 그리고 또 그가 간절히 바란 100년을 넘어 영속하는 LG의 꿈을 위해 갈등을 풀고 힘을 모았으면 한다.

“고(故) 구본무 회장님, 보고 계십니까. 들리십니까.” 피켓을 든 야구 팬의 모습이 세 모녀의 상속 소송과 오버랩되며 가슴 끝이 꽉 조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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