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65) 씨는 결국 설악산으로 돌아왔다. 23일 방송된 MBN 밀착 다큐멘터리 ‘특종세상’을 통해 임기종 씨는 근황을 전하며, 방송 출연 이후의 달라진 삶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방송 출연 이후 그의 일상은 무너졌다. 임기종 씨는 “내 마음이 굉장히 괴롭고 외로웠다”며 “일을 못 하니까”라고 고백했다. 그는 “방송에 나와서 짐값을 얘기하는 바람에 1년 동안 (지게꾼 일을) 못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해 설악산 비룡폭포 1시간 30분에 운반비가 6000원이라고 공개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설악산 지게꾼 노동 착취 논란’이 일었다. 결국 4년 경력의 지게꾼 임 씨는 지난 1년간 지게꾼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흔들바위 2만 원, 비룡포 6천 원, 비선대 8천 원으로 옛날 20년 전 단가를 얘기한 건데 시청자들이 현재까지도 그 금액을 받는 줄 알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려서 오해를 엄청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거래하고 있던) 절에 핍박이 들어간 것 같다”며 “화살이 그쪽으로 꽂히니까 마음이 굉장히 아프더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이 그게 아닌데, 너무 속상하고 우울증까지 올 정도였다”고 당시 심정을 떠올렸다.
그는 1년간 건설 현장의 일용직부터 이삿짐센터까지 다른 일도 해봤지만 몸은 덜 고달플지언정 마음만큼은 남의 옷을 입은 듯 편치 않았다고. 결국 그는 다시 설악산 지게꾼으로 돌아왔다. 설악산은 그가 가장 힘들게 일한 곳이지만, 그의 고된 삶을 위로해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임기종 씨는 일이 없는 날에도 빈 지게를 지고 설악산에 올랐다. 임기종 씨는 “올라오면 혹시나 일해 달라고 연락이 올 수도 있어서 앉아 있다”며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천불 나더라”고 말했다. 현장에 나와 앉아서 기다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설악산의 민간 휴게소와 매점 대부분이 철거되거나 헬기로 물건을 받게 되면서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지게꾼으로 한창 일할 때는 하루 최대 열두 번씩 설악산을 오르내렸다. 한 때는 60명이 넘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남은 설악산의 지게꾼은 임기종 씨 단 한명뿐이다.
16살 소년은 설악산의 지게꾼이 됐다. 11살 때는 어머니가, 14살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가난한 형편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먹고살아야 하니까 고난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고 지게꾼이 된 이유를 밝혔다. 158cm 작은 체구를 가진 그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40~50kg 짐을 기본으로 지고 다닌다.
그는 과거 100kg 이상의 짐을 지고 다녔다. 초기 2년간 어깨에 피멍이 들고 다리에 알이 배기기도 했다. 120~130kg의 냉장고를 지고 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했고,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기기도 했다.
임기종 씨는 “견디다 보니까 ‘내 재능을 찾았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게꾼은 그에게 천직이었다. 그는 산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서 좋다며, 자신에게 설악산은 영원한 친구라고 말했다.
양아라 에디터 / ara.yang@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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