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교대역에 채무 관련 법무법인 광고물이 붙어있다. [연합]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한 저소득층의 가계 실질소득이 지난 3분기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 하위 가구일수록 감소폭이 컸다. 고소득층이 소득과 지출 모두 증가한 것과는 정 반대의 양상이다. 물가 상승과 경기 위축 여파가 저소득층에 더 가혹하게 작용한 셈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한국은행은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고물가 상황이 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취약계층이 경제 한파를 더 오래 견뎌야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와 관련 지난달 30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내년에도) 물가가 높아서 취약 계층, 빚을 많이 낸 사람,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5일 국가통계포털(KOSIS) ‘전국 1인 이상 소득5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실질)’를 분석한 결과, 1분위(하위20%) 소득은 3.8% 줄었다. 2분기 3.9% 감소에 이어 4%에 육박하는 감소세가 2분기 연속 나타난 것이다. 감소세는 소득이 적으면 적을 수록 거세게 나타났다. 두번째로 감소세가 거센 계층은 2분위로 -2.7%를 나타냈다.

통계청은 1분위 가구의 소득 감소는 지난 7월부터 쏟아진 집중 호우 등 날씨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건설업 등에서 일하는 임시 일용직의 근로 소득이 줄었고 1분위 가구 비중이 높은 농가 소득이 줄면서 사업 소득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반면, 소득이 높은 5분위(상위20%)는 오히려 1.0% 증가했다. 4분위도 1.8% 늘었다. 이에 전체 실질소득 평균도 0.2% 상승했다.

실질소득은 명목소득을 당해 연도 물가로 나눈 값이다. 물가 영향을 제거해 소득이 갖는 실제 구매력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다. 명목소득이 올랐어도 물가 상승세가 거셌다면 실질소득은 상승 폭이 제한된다.

세금과 보험료, 이자비용 등 비소비지출을 뺀 실질 처분가능소득도 마찬가지 흐름을 보였다. 고금리 여파도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더 큰 타격을 준 것이다. 3분기 1분위 처분가능소득은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해 2.5% 감소했다. 이 역시 감소 폭이 가장 크다. 그 다음은 2분위(-2.2%)였다. 3분위(0.2%), 4분위(1.5%)는 상승했다. 5분위(-0.1%)는 소폭 감소에 그쳤다.

내년에도 상황이 나아지기는 어려워보인다. 한은은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1%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4%에서 2.6%로 0.2%포인트 높였다. 우리 경제 반등 폭이 당초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물가 둔화 속도도 예상보다 더 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물가안정목표인 2.0%에 수렴하는 때는 내년 말이나 2025년께로 예상했다.

한은의 전망치보다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은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국내외 경제동향 및 전망’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다시 심화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이차 파급효과가 확대되는 경우, 내년 성장률이 1%대 후반(1.9%)으로 낮아지는 반면 물가상승률은 기본 전망(2.6%)을 다소 상회(2.8%)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가 오름세를 견디지 못하면 가계는 ‘적자 살림’을 꾸리는 악순환을 맞는다. 실제 3분기 1분위 가구 10가구 중 6가구(56%) 꼴로 처분가구 소득보다 소비지출이 큰 마이너스 살림을 기록했다. 2분위는 23.6%. 3분위 20.3%, 4분위는 13.2%를 기록했고, 가장 소득이 높은 5분위는 9.8%에 머물렀다. 물가가 올라 꼭 필요한 물품의 가격이 오르면서, 저소득층이 이를 감당하지 못한 셈이다. 1분위 가구는 가정용품·가사서비스(-19.7%), 교육(-13.9%), 교통(-8.1%) 주류·담배(-7.2%) 등에서 지출을 조였으나, 적자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창호 한은 조사국장은 “(전체 가구의)실질 소득을 대략 계산해 보면 2021년까지는 아마 플러스였던 것 같다”며 “지난해와 올해 물가가 너무 오르면서 마이너스가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내년엔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기 때문에 실질 소득도 조금 개선될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홍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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