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택한 이상민 의원이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도중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유성을)이 민주당 탈당을 저울질한다는 소식에 국민의힘은 “버선발로 맞아드리겠다”(조정훈 의원·인재영입위원)고 했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되면 국민의힘이 가장 역대급 비용을, 몸값을 제공하고 모셔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까지 했다. 쌍수 벌려 환영한다는 뜻이었다. 비명계이지만 5선의원의 야당 탈당과 혹시라도의 여당 입당은 국민의힘으로선 상징성이 큰, 굉장한 호재라고 여긴 제스처였다.

어쨌든 운신에 장고하던 이 의원은 지난 3일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탈당을 선언하면서 “(지금의 민주당은) 내로남불과 위선, 후안무치, 약속 뒤집기, 방패 정당, 집단 폭력적 언동, 혐오와 차별 배제, 무능과 무기력, 맹종 등 온갖 흠이 쌓이고 쌓여 도저히 고쳐쓰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제 내 정치적 꿈과 비전을 펼치기 위해, 상식의 정치를 복원하기에 그 터전이 될 수 없는 지금의 민주당과 유쾌하게 결별하고 삽상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했다. 내년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여야 현역의원 중 정치적 문제로 탈당을 감행한 것은 처음이다. 5선 중진이라는 가볍지 않는 무게를 감안하면 향후 정치 지형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는 시선이 뒤따랐다.

먹던 우물에 침뱉지 말라 vs 버선발 맞이

당장 민주당은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먹던 우물에 침 뱉지 말라. 2008년 자유선진당, 이번에는 국민의힘으로 가는 거냐”(박상혁 의원), “국회의장을 하고자 당을 팔았다”(전용기 의원), “개인의 영달을 위한 탈당일 뿐(조승래 의원)”이라며 배신자의 낙인을 찍는데 서슴치 않았다. 극성 지지층은 이 의원이 ‘이재명 사당, 개딸당’ 등으로 표현하면서 당을 탈당하자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험한 말도 줄을 이었다.

국민의힘은 환영 일색이었다. “어떤 정치적 결단을 내리든 정치 후배로서 응원하겠다”(장예찬 청년최고위원)며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 의원의 탈당과 관련한 민주당의 비판에 대해 “놀라운 것은 한솥밥을 먹었던 민주당 의원들의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이라며 “이 의원이 민주당 탈당을 선택했는데, 평소 소신과 철학을 지키려 노력한 점에 비추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라며 옹호했다. 아예 한술 더 떠 국민의힘으로 입당했으면 하는 바람도 표했다. “이 의원이 국민의힘과 함께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아마 국민의힘 내에서 이 의원을 배척하거나 할 분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김병민 최고위원), “이 의원이 국민의힘에 들어온다면 김기현 빅텐트를 슈퍼 텐트로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태영호 의원)이란 게 대표적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 의원의 탈당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은 이렇듯 극과 극이었다. 재빠르게 이 의원과의 ‘손절’에 나선 민주당과 이 의원의 탈당을 어떻게 하면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지 정치권 특유의 계산법이 당장 가동된 것이다.

민주당은 이 의원의 탈당이 당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고 했다. 탈당은 이미 예고돼 있었기에 충격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어차피 탈당할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당내 동요는 없다”며 “정리할 사람은 빨리 정리하는 게 낫고, 오히려 잘됐다는 의견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내부 기류는 약간 다르다. 이 의원의 탈당으로 인해 당내 인사의 돌발행동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거침없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온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쪽에 주시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28일 이낙연계 싱크탱크 ‘연대와 공생’이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진행한 ‘대한민국, 위기를 넘어 새로운 길로’ 포럼 기조연설에서 당이 사당화됐고, 당내 민주주의가 억압받고 있다며 이 대표의 리더십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화가 난 극성지지층은 ‘이낙연 출당’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 홈페이지에는 이 전 대표가 당내 통합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출당을 요청하는 내용의 청원까지 올라왔다. 이 전 대표는 이에 “당에서 몰아내면 받아야지 어떻게 하겠나”고 했다. 탈당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 전 대표는 아예 연합뉴스TV ‘뉴스포커스’ 인터뷰를 통해 창당 가능성에 대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세간에 ‘이낙연 창당설’이 돌고 있다는 질문에 “때가 되면 말씀을 드리겠다. 그것을 너무 길게 끌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달라지기를 기다렸는데 달라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그리고 저의 기다림도 이제 바닥이 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인내의 시점이 바닥났다는 것으로, 모종의 결심이 임박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택한 이상민 의원이 지난달 21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만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

이 전 대표가 연일 이렇듯 강경발언을 이어가면서 비명계(혁신계) 의원 모임인 ‘원칙과 상식’ 행보 역시 주목 대상으로 떠올랐다. 현재까지는 탈당까지의 신호음은 없다. 다만 원칙과 상식은 민주당 지도부에 도덕성과 민주주의 회복 방안에 대한 답변을 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원칙과 상식은 이와 관련해 “(당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면,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가 최종적 결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요구한 혁신메시지를 연내에 당이 들어주지 않으면 결국 탈당카드도 배제할 수 없다는 압박으로, 향후 진로의 여지를 암시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낙연 전 대표 등 추가 움직임 주목

탈당을 택한 이 의원은 이와 관련해 함의가 있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지난 4일 MBN 뉴스와이드 인터뷰에서 “탈당의 고민을 말한 민주당 의원이 있다”고 했다. 자신 외에도 탈당에 대해 장고하는 인사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 뒤를 이어 탈당하는 이가 생길 것이라는 뜻이다.

어쨌든 민주당의 흐름은 지금은 정중동 흐름이지만, 급박한 상황으로 바뀔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의원의 탈당으로 인한 ‘도미노 탈당’ 기미는 없지만, 어느 시점에서 탈당이 러시를 이룰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이 신속하게 ‘이상민 손절’에 나서며 당내 잡음 흔적 제거 쪽으로 중지를 모은 듯한 모습은 이런 정치적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은 어부지리를 겨냥하는 듯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이 의원이 여당에 입당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무소속 등 다른 선택을 해도 불리할 게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는 다른 정당이다. 이상민 의원의 의지가 있다면 (국민의힘에 합류하는 게) 가능하다”(김병민 최고위원)는 등 계속 이 의원에게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역시 속도 면에선 민주당 이상 빠르게 러브콜를 보내면서 재빠르게 ‘이상민 활용법’을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의원의 탈당에 대한 파장이 별로 없다면서도 앞으로의 예고편이 아니냐는 물밑 우려 속에 전광석화로 중지를 모은 민주당의 ‘이상민 손절법’, 남의 당 얘기에 귀 기울이면서 어떻게 하면 과실을 챙길까 눈을 번뜩였던 국민의힘의 ‘이상민 활용법’. 어느 것이 유효했는지는 내년 총선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김영상 논설실장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