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반도체가 (순방 성과의) 거의 90%였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 동행을 마치고 귀국하며 이처럼 밝힌 가운데 ‘나머지 10% 성과’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키우기 위해 한 때 삼성전자가 눈독 들였던 NXP가 네덜란드에 있는 만큼, 이번 방문을 계기로 인수합병(M&A)을 재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네덜란드 방문을 마치고 15일 오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3.12.15. [사진=뉴시스]

15일 업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회사 NXP는 지난 2021년 삼성전자가 인수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양측이 인수 금액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NXP가 요구한 몸값이 680억 달러(약 80조원)로 치솟으면서 부담을 느낀 삼성전자가 포기한 것이다.

NXP는 2004년 필립스 반도체 사업부문이 분사해 세운 자동차용 반도체 전문 업체다. 독일 인피니언과 함께 업계 ‘투톱’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자동차의 각종 장치를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와 인포테인먼트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미국에 제조 기반을 둔 자동차용 반도체 회사를 M&A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NXP 인수 가능성을 높게 봤다. NXP는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이다.

NXP는 한국에서 시스템반도체 설계 회사로 잘 알려져 있지만, 네덜란드 공장을 포함해 총 칩 생산량의 45%를 자체 생산한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NXP의 주 공정인 8인치(200㎜) 웨이퍼 라인은 현대 반도체 시장에서 레거시(옛) 공정으로 통한다. 최근 레거시 공정을 기반으로 한 아날로그 반도체 영역에 대한 수요의 범위가 더욱 다양하고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NXP는 신뢰성과 안정성을 담보해야 하는 차량용 반도체시장에서 20%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사수하고 있다. 덕분에 글로벌 반도체 불황 속에서도 NXP는 ‘나 홀로 호황’을 이어가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69억 달러(약 8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역시 상반기에만 37억 달러(약 4조7000억 원)를 기록해 지난해 기록 경신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5일 오전 3박 5일간의 네덜란드 일정을 마치고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면서 일정에 동행한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을 불러 취재진에 질문에 답하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권용삼 기자]

삼성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NXP 인수를 검토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인수 금액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M&A는 무산됐다. NXP는 미국 반도체회사 퀄컴에 제시한 440억 달러(약 51조원)를 삼성전자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21년에도 검토에 나섰으나, NXP의 몸값이 더 치솟자 포기했다. 당시 시가총액은 62조원가량으로, 업계에선 통상 인수 금액이 시가총액보다 20% 높은 걸 고려할 때 몸값이 최소 7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NXP가 삼성전자에 인수 금액으로 요구한 금액은 80조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저울질하는 사이 NXP의 몸값은 최근 더 폭등했다. 이날 기준 시가총액은 599억7600만 달러(약 77조7829억원)로, 2년 새 25%가량 뛰었다. 이에 따라 인수 금액은 최소 90조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는 2021년에 3년 안에 대형 M&A를 진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 업체 하만을 9조4000억원에 인수한 후 굵직한 M&A에 나선 적이 없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M&A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M&A 추진은 갈수록 흐지부지해졌다. 함께 인수 후보로 언급됐던 독일 반도체 회사 인피니언테크놀로지도 저울질하는 사이 몸값이 폭등해 삼성전자가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 몸값은 427억 유로(약 61조원)로 1년 새 40%가량 뜀박질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대형 M&A를 통한 신사업 확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일각에선 미래 동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삼성 계열사들을 총괄·조율하는 사업지원TF가 오너일가나 내부 업무에 비중을 두면서 성장 동력 발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한 몫 했다.

이에 이 회장은 최근 사장단 인사를 통해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고, 미래사업기획단장에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을 세워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성장 동력을 발굴할 것을 주문했다. 전 부회장은 2010년대 들어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반도체 신화를 일궈냈던 인물로, 한 때 권오현 전 회장의 후계자로도 거론됐을 만큼 그룹 내에서 신망이 높았다. 권 전 회장은 퇴임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를 이끌 인물로 전 부회장을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NXP반도체가 전기차 자동차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NXP]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대형 M&A에 대한 기대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함께한 이 회장의 이번 네덜란드 방문으로 NXP 인수설에 다시 불붙을 지도 관심사다. 이 회장은 네덜란드에서 ASML 외에 NXP 등 현지 주요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회장은 당시 와병 중이던 이건희 선대회장을 대신해 삼성전자 최고결정권자 역할을 하면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4건의 M&A를 성사시켰다. 하만이 이 회장이 마지막으로 단행한 대규모 M&A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전망이 밝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NXP에 눈독 들일만한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수요 급증으로 규모가 지난해 635억 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2026년에는 962억 달러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자율주행차로 생산을 전환하는 중으로, 오는 2028년까지 전기차의 연평균 성장률은 26.7%”라며 “일반 내연기관차 1대에 탑재되는 반도체 칩이 600~700개라면, 전기차와 스마트카(자율주행 기능 탑재 등)는 각각 1600개, 3000개의 반도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급속도로 커질 듯 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M&A를 추진한다면 실탄은 충분하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유동자산은 206조4386억원으로 이 중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인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 규모는 93조원에 달한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지분을 잇따라 매각하며 1년 전과 비교해 약 25조원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2030년 시스템 반도체 분야 1위 목표 달성을 위해 차량용 반도체에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M&A, 대규모 투자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 미래사업기획단 신설과 함께 이 회장이 이번에 NXP 측과 만남을 가진 것으로 보여지는 만큼, 삼성전자가 성장세가 높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NXP에 다시 관심을 둘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는 반대로 삼성전자가 자체 보유 현금으로 M&A를 충당할 수 있는 재무구조를 갖추지 못해 단기간 내 M&A가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자국 우선주의가 심해져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하기엔 환경이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에 따른 국내외 사업 투자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기에 대응할 재원 비축이 절실해진 만큼, 삼성전자가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NXP 같은 곳을 지금 당장 인수하려 들지 않을 듯 하다”며 “각 정부당국이 자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반독점규제 여부를 평가하는 경향이 특히 반도체분야에서 강해져, 삼성전자가 빅딜 의지가 있다고 해도 최종까지 성사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조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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