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N 젼력 분석가인 미나 카임스./화면 캡쳐

프로 스포츠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미식축구(NFL)의 인기와 지배력은 다른 종목을 압도한다. 수입이 말해 준다. 프로야구(MLB)의 한 해 총수입은 14억 달러, 프로농구(NBA)는 12억 달러. 이에 비해 미식축구는 2배가량인 25억 달러에 이른다.

미식축구는 누가 뭐래도 남자들의 세계. “오로지 남자만이 뛸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충분한 기량이 있다면 모든 인간은 뛸 자격이 있다”는 것이 NFL의 공식 입장.

그러나 103년 역사에 단 한 명의 여자 선수도 정식 시합에서 뛴 적이 없다. 여자 선수들 체격과 체력으론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 고교와 대학에 아주 드물게 여자 선수들이 있다. NFL에 적은 숫자지만 여자 코치가 존재하는 이유다,

■태극기를 사랑하는 혼혈 여성

그런 NFL에서 경기 분석가로 한국계 여성이 이름을 날리고 있다. 미나 카임스는 스포츠 전문 텔레비전 방송인 ‘ESPN에서 가장 중요한 NFL분석가, 선임기자, 팟캐스트 사회자’이다. ESPN 미식축구의 얼굴로 꼽히는 ‘NFL 라이브’에 고정 출연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특이하게도 늘 태극기를 볼 수 있다.

NFL에서 여자는 기자나 아나운서는 될 지언정 분석가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미식축구의 전략·전술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 선수 출신도 감당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여자는 선수도 없기 때문. 그런 영역에 대학 등에서도 전혀 선수 경험이 없는 여자가 뛰어들었다. 게다가 태극기를 늘 등 뒤쪽에 꽂아놓고 있는 아시안.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5월 유명 정치평론가인 아나 콕스는 카임스와 대담을 하면서 “ESPN의 유일한 여성 분석가이며 유일한 여성 ‘코리안-아메리칸’ 분석가”라고 소개했다.

“당신은 텔레비전에서 최고의 줌 룸 배경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아름답다. 그 중 내가 주목한 것은 대한민국 국기다. 그거 오래전부터 있었나?”

“아마 6개월 전 집에서 국기를 찾았다.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보게 될 배경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백인 남성이 나의 애청자가 되어주기를 원한다면, 나 역시 아주 소중히 생각하는 다른 인구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분에 꽂았다.”

“그 국기를 놓을 때 반발을 걱정했었나?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쁜 반응이 좀 더 심해진 것 같다.”

미식축구는 미국의 국가 스포츠라 불린다. 웬만한 시청자라면 태극기가 뜨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3년 넘게 태극기를 굳게 지키고 있다.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인구” 속에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카임스는 순수 한국인 혈통도 아니다. 혼혈. 그런데도 한국을 향한 해바라기 사랑을 하고 있다. 그녀의 한국사랑은 아마도 어머니의 핏줄에서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가족의 한국사랑

그녀의 아버지는 주한 미 공군에서 조종사로 근무했던 미국인이나 어머니는 서울 출신의 한국인. 한국을 떠난 지 40년이 넘는 어머니는 손흥민 선수의 열혈 팬이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핏줄을 사랑한다”는 카임스는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맛있는 한국 음식이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미나’는 한국 이름이다.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해 ‘엄마의 나라’를 잘 안다. ESPN 잡지에 한국 프로야구의 방망이 던지기(배트 플립)에 관한 기사도 썼다. 부산의 야구 열기도 전했다. 2023년 1월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태극기 이모티콘과 함께 ‘나는 아시안. 코리안-어메리칸 날을 축하’라고 적었다.

구독자가 2만7,000명이 넘는 소셜미디어에 어머니는 거의 날마다 손흥민과 토트넘에 관한 글을 쓴다.

“한국에서 그는 진짜 스타다, 방탄소년단 수준이다. 언젠가 나는 런던에 여행가서 소니와 직접 만나서 한국어로 ‘왜 그렇게 부드럽고 착한지’ 물어볼 거다.“

카임스의 오빠도 마찬가지. 그는 2002년 월드컵을 보기 위해 한국에 다녀왔다. “손흥민의 자신을 다루는 방식, 양발 사용법, 속도 등이 모두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는 이유다. 나는 그를 죽도록 사랑한다. 토트넘을 응원하는 이유다.”

예일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카임스는 원래 경제 기자였다. 블룸버그, 포브스 등 세계적 경제 전문 매체에서 뛰어난 기자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식축구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자로 2014년 ESPN에 입사했던 카임스가 분석가로 변신하자 “여자가 무슨 미식축구를 아느냐”며 비난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이제는 쟁쟁한 선수 출신들을 제치고 ESPN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분석가로 꼽힐 정도로 탄탄하게 자리를 굳혔다.

ESPN에서 말을 험하게 하기로 악명 높은 프로농구 해설자 스태픈 스미스가 “미나는 뛰어난 정신자세를 가지고 있다. 매우 똑똑하다. 매우 열심이다. 매우 아는 것이 많다. 텔레비전을 훌륭하게 만든다”고 극찬할 정도. 카임스는 최근 ESPN과 연봉 170만 달러의 다년 계약을 맺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별나게 국적을 따진다. 해외동포들이 살고 있는 나라로 귀화를 했다면 그들을 밀어내기 일쑤다. 재일동포들 가운데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정은 잘 고려하지 않는다. 미국 등에서 많은 교포 골프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쳐도 관심을 덜 가진다. 우리 사회에 ‘한민족’이라는 연대의식이 모자란 탓이다.

그러나 카임스와 같은 ‘코리안’들이 많다. NFL 수퍼볼 최우수선수였던 하인스 워드 등. 그들은 혼혈이면서 국적은 미국이나 ‘코리안’으로도 불린다. 핏줄이 그만큼 중요하다. 한민족인 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나라 사랑만큼 민족 사랑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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