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오피스 빌딩 가격 하락으로 해외 부동산 펀드 부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뒤늦게 관련 리스크 규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올해만 11조 6000억 원 규모의 해외 부동산 펀드 만기가 도래하는 상황에서 나온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부동산 펀드 80% 손실…당국은 ‘뒷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트리아논 빌딩 전경. 사진 제공=이지스자산운용

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는 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대체투자펀드 리스크관리 모범규준’ 개정안을 19일부터 시행한다.

새 개정안은 부동산 펀드 운용 시 자본환원율을 활용해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담보인정비율(LTV) 위반 가능성 같은 리스크 측정을 의무화하는 게 뼈대다. 자본환원율이란 미래추정이익을 현재 가치로 전환하기 위해 적용하는 할인율로 주로 대체투자자산이나 비상장주식의 가치를 평가할 때 쓰인다. 당국도 최근 발표한 ‘공모펀드 경쟁력 제고 방안’에서 대체투자 자산의 공정가치를 주기적으로(최소 연 1회 등) 평가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국과 협회가 잇달아 조치를 내놓은 것은 해외 부동산 펀드의 절반가량(약 40.7%)를 차지하는 임대형 펀드의 부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형 펀드는 금융사에서 담보 대출을 받아 건물을 매입한 뒤 임대해 발생하는 수익을 배당한다. 운용사는 대출 만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건물을 매각해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매입 당시보다 자산가치가 하락한 상황에서는 채권단의 만기 연장조치가 없는 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미 해외 부동산 펀드 대다수가 손실을 메꾸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출시된 해외부동산 공모펀드 14개 중 11개(약 78.57%)가 손실을 내고 있다. 주요 투자 대상인 미국·유럽 상업용 오피스의 공실률이 코로나19 이후 20% 안팎까지 치솟으면서 자산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에만 11조 6000억 원어치 물량의 펀드 만기(공모·사모 합계)가 돌아온다. 자산가치 하락으로 LTV 비율이 예전보다 높아져 대출을 연장해주는 금융사들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하는 이지스자산운용의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가 대표적이다. 주요 임차인이 계약 연장을 거부함에 따라 지난 1년 간 기준가가 82% 폭락했다. 지난해 11월 말까지였던 펀드 만기를 다음 달 말까지 3개월 연장했지만 남은 두 달 간 상황이 반전되기는 어렵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시장 회복을 기다리는 대신 아예 손절을 택했다. 지난해 10월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 9-2’에 편입한 텍사스 오피스 빌딩을 매입가 대비 약 20%(원화 기준) 싼 가격에 매각한 것이다. 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쓰려는) 자본환원율은 부동산 거래 사례를 기반으로 계산하는데 거래가 많지 않아 실제 자산가치를 완전히 반영하기 힘들다”며 “이미 다수 펀드들의 손실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실효성도 없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한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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