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는 복합위기의 심화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특히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약을 하거나 아니면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작년 11월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2.2%)보다 소폭 하향 조정된 2.1%로 전망했지만, 이것도 IT 부문을 제외하면 1.7%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면 올해 성장률이 1.9%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LG경영연구원도 지난달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1.8%로 전망했다. 이 전망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1954년 통계 작성 이래 최초로 2년 연속 1%대 성장률을 기록해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는 주요 선진국의 성장세 둔화와 지난 2년간 급상승한 고금리의 후유증으로 성장 둔화와 완만한 디스인플레이션이 예상된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공개한 점도표에서 올해 말 연방기금금리 중앙값을 4.6%로 제시해 올해 금리를 0.25%포인트씩 3차례 인하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이것은 긴축의 시대가 끝나가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피벗(통화정책 전환) 시점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최근 중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리면서 올해 세계 경제전망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중국이 부채가 많은 지방정부와 국영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 부양책을 사용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하방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는 미국 대선, 중국 경기 둔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달 정부가 반도체 등 제조업 생산·수출 반등으로 경기 회복세 조짐이 보인다고 두 달 연속 낙관론을 폈지만, 고용 창출과 수출·투자의 주역인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차갑게 식어 있다. 한국은행의 작년 12월 전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3개월 연속 70으로 장기 평균(2003년 1월~2022년 12월 평균치)인 77을 크게 밑돌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12월 3.2%로 5개월째 3%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올해 연말로 갈수록 물가 목표인 2%에 근접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새해 한국 경제가 가야할 길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와 지속성장의 길로 도약하는 것이다.

미국 연준이 올해 상반기 중 금리 인하를 시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물가도 하향 안정세를 보이므로 한국은행은 국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현재 국가재정 상황은 급증한 국가부채에다 경기 불황에 따른 세수 감소로 재정건전성이 매우 우려되므로 정부는 재정준칙을 시급히 법제화하고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은 최소화해야 한다. 다만 최근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고금리와 가계부채 비중이 큰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미래 성장을 위한 R&D 투자는 지속해야 한다. 전통적인 통화·재정정책은 한시적인 경기 부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한국 경제를 살리는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한국 경제에서 우려되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경제의 장기 성장궤도를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이다. 지난달 한국은행은 ‘한국경제 80년(1970~2050) 및 미래 성장전략’ 보고서를 통해 경제성장률은 2030년대 0%대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되는데, 생산성을 높이지 못할 경우 20년 후인 2040년대부터 ‘마이너스(-) 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작년 6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처음으로 2%에도 못 미친 1.9%로 추정했다. 지금은 경제성장률 변화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잠재성장률의 추락을 반전시키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 취임한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강조한 민간 주도의 ‘역동 경제’가 작동해야 경기가 순환되고 일자리가 창출돼서 만성적인 저성장 늪에서 탈출할 수 있다. 대안은 과감한 구조 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변화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기업을 옥죄고 투자를 저해하는 각종 ‘킬러 규제’를 조속히 혁파하는 규제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과감한 노동개혁으로 기업가의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및 신성장동력 육성 등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생산성을 올려 미래 성장을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생산성을 높이더라도 노동 감소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을 견인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늦었지만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법을 준비해야 한다. 외국인 전문 인력 및 해외 교포의 적극적 유입 등 획기적 이민정책과 함께 취업, 결혼, 출산, 육아, 주택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새해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새로 출범한 경제팀은 구조 개혁과 정책 전환에 실기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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