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조승우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회부터 8회까지 5번 노미네이트 됐는데 처음 상을 받았습니다. 웨버형, 매킨토시형 감사합니다.”

무대와 매체를 오가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톱배우 조승우가 마침내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0년 학전에서 뮤지컬로 데뷔, ‘오페라의 유령’으로 안게 된 24년 만의 수상이다. 조승우를 배출한 ‘학전’은 공로상의 주인공이었다.

‘뮤지컬인들의 축제’인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가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막을 올렸다.

일 년에 딱 한 번 열리는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시상식인 ‘한국뮤지컬어워즈’는 전 세계 그 어떤 시상식보다 화기애애하고 따뜻하다. 배우와 제작자를 비롯한 업계 관계자,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최고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네이버TV로도 생중계된 이날의 시상식은 마지막 순간 9만 6000회까지 시청수가 치솟았다.

배우 박보검이 1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박보검부터 조승우까지…스타 총출동 ‘우리의 축제’에 쏟아진 말들

톱배우 박보검 조승우, K-팝 그룹 동방신기 출신으로 뮤지컬계 슈퍼스타 자리에 오른 김준수까지….

올해 한국뮤지컬어워즈는 ‘별들의 잔치’였다. 이 시상식이 기존의 연말 시상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후보에 오른 대다수의 배우들이 수상 여부와 관계 없이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배우 박보검은 뮤지컬 ‘렛미플라이’로, 김준수는 ‘데스노트’로 각각 신인상, 남자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단 한 순간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3시간 넘게 이어진 시상식을 함께 했다.

지난 한 해 관객들을 사로잡은 작품들의 축하무대가 이어질 때마다 객석에 앉은 배우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을 췄다. 조승우는 “그동안 팬들은 시상 셔틀, 박수 셔틀하러 가면서 뭐가 그렇게 좋아 웃고 있냐고 했는데, 이 곳에 오면 정말 좋았다”며 “뮤지컬 인들이 즐기는 축제가 딱 하나 남아 있는 자리에 오는 것이 기쁨이고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조승우를 비롯해 ‘이프덴’의 정선아가 주연상, ‘렌트’ 김호영이 남자 조연상, ‘이프덴’의 이아름솔이 여자 조연상, ‘오페라의 유령’ 김주택은 남자 신인상, ‘인터뷰’의 박새힘은 여자 신인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에서도 입담이 폭발했다. 조승우는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오페라의 유령’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국내 최고령 ‘유령’으로 시작해 아직도 최고령 ‘유령’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금도 대구에서 노를 젓고, 왜곡된 사랑으로 인해 천장에서 뛰어다닌다”며 “수상소감을 너무 안해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부산에서 공연을 하면서 ‘이 작품 정말 명작인 것 같다. 나 지금 되게 행복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제까지 98회 공연을 했는데, 그 마음 그대로 서울, 대구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페라의 유령’을 하며 많이 배웠다. 어느덧 40대 중반이고 24년차인데, 언제나 머물러 있지 않고 고통을 감수하다 보면 한 발자국은 아니라도 반 발자국이라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끝까지 멱살 잡고 ‘다른 사람 것이 아닌 네 것을 하라’고 이끌어준 양주인 음악감독께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조승우가 남자 주연상으로 호명되며 무대에 오를 때, 함께 후보에 올랐던 박강현에게 휴대폰을 맡기고 올라오는 장면도 ‘킬링 포인트’였다.

‘렌트’로 조연상을 받은 배우 김호영은 “22년 전인 2002년 ‘렌트’의 엔젤로 데뷔해 2004년, 2007년, 2020년, 2023~2024년까지 총 다섯 번의 엔젤을 맡았다. 피부 나이로 치면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엔젤은 신선함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이 역할 만큼은 너무 노련해진 것 아닌가 싶어 이번을 마지막으로 떠난다”며 “최장수, 최고령 엔젤로 수고했다고 주신 상이 아닐까 싶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감사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써왔다. 두 분을 추첨해 감사 인사드리겠다. 내가 럭키 드로우를 좋아한다”며 야무지게 메고 나온 백에서 쪽지 두 장을 꺼내 배우 전수경, 박준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 인사는 유행어였다. “여러분, 너무 끌어 올려지는 밤이에요. 끌어올려.”

앙상블 상을 받은 뮤지컬 ‘멤피스’ 팀. [연합]
“창작이여, 영원하라”…韓 뮤지컬 계의 자화상

이날의 시상식은 현재 국내 뮤지컬 업계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팬데믹을 지나오며 ‘안정성’을 추구해온 빈약한 생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극장의 창작 초연 작품은 극히 일부였고, 그로 인해 과감하게 창작 뮤지컬에 도전한 제작사가 상을 독식했다. 게다가 지난해 주요 작품상에 후보에 올랐던 뮤지컬들이 올해도 후보에 올랐다. 업계 전문가는 “대부분의 재연작이 초연 이후 상당한 수정과 보완을 거치는데, 초연작과 재연작이 같은 후보에 올라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창작 초연작 만을 후보에 올리는 대상은 ‘시스터즈’에 돌아간 가운데, 주요 상은 제작사 쇼노트의 작품들이 가져갔다. 쇼노트는 뮤지컬 ‘멤피스’와 ‘이프덴’으로 각각 4관왕에 올랐고, 두 작품을 제작한 쇼노트의 김영욱, 이성훈, 임양혁, 송한샘은 프로듀서상을 품에 안았다. ‘멤피스’는 작품상(400석 이상), 앙상블상, 연출상, 무대예술상을 받았다. ‘이프덴’은 여우주연상(정선아), 여우조연상(이아름솔), 음악상(오케스트레이션 부문), 무대예술상을 받았다.

뮤지컬 ‘라흐 헤스트’는 작품상(400석 미만), 음악상(작곡 부문), 극본상으로 3관왕에 올랐다. 이 작품은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아내이자 뮤즈였고, 수필가이자 화가였던 김향안(본명 변동림)의 삶을 다뤘다.

한국 걸그룹의 역사를 다룬 ‘시스터즈’를 제작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보통 망한 작품이 상을 받는다”며 “프로듀서는 창작자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이다. 멍석을 깔되 틀과 형식을 정하지 않고 창작들을 마음껏 놀게 하는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박칼린 감독은 “‘시스터즈’는 엄청나게 망했고, 엄청나게 행복했던 작품이다. 뭔지도 모르고 끌려온 배우들, 그렇지만 찬란하게 빛났다. 창작이여, 영원하라”라는 소감을 전했다.

배우 장현성이 1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한 마음으로 ‘학전 살리기’…희망은 꺼지지 않았다

현재 공연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학전 살리기’다. 시상식에서도 공로상은 학전에게 돌아갔다.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산실로 33년간 대학로를 지켜온 학전은 지속적인 재정난과 김민기 대표의 건강 문제가 겹치며 오는 3월 15일 폐관을 예고했다.

김민기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 학전 1기 배우 장현성은 “학전은 1991년에 소극장 학전으로 개관했고, 1994년에 극단 학전이 생겨나 올해로 33주년을 맞았다”며 “지금까지 450명의 배우, 300명의 스태프, 200여명의 직원들이 학전을 지켰다. 그 중심에는 김민기 선생님이 계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의 “학전을 거쳐간 배우, 관객, 스태프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꼭 다시 일어나겠습니다”라는 소감을 들려줬다.

조승우 역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2000년 9월에 학전 극단 뮤지컬 ‘의형제’로 데뷔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스물 한 살에 무대가 줄 수 있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깊이 새겼다”며 “학전은 내게 배움의 터전이자 추억의 장소였고, 집이었다. 김민기 선생님은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가장 친하고 편안한 동료였다. 이 상의 영광을 학전과 김민기 선생님께 바치겠다”고 말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도 “문화예술계의 영원한 장인 김민기 선생님의 쾌유를 빈다”고 했다.

각계각층에서의 ‘학전 살리기’로 학전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학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간을 임대해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날 시상자로 나온 유병재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학전과 김민기의 뜻을 이어나가기 위한 논의를 계속해왔다. 3월 이후에도 학전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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