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12년의 회장 임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해에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한국 축구의 숙원을 풀 기회를 날려버렸다.

아시안컵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책임론’은 현장 지도자를 넘어 지도자 선임 과정에 잡음을 낳은 정 회장까지 닿고 있다. 정 회장이 회장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4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 2번째 경기에서 개최국 카타르가 이란을 꺾으면서 요르단과 카타르의 결승 대진이 완성됐다.

축구팬들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1일 자정 64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컵을 거머쥐는 장면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으나 앞서 7일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경기에서 한국이 패배하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게 됐다.

애당초 아시안컵은 한국이 강세를 보이던 대회는 아니다. 한국은 1956년 1회 대회, 1960년 2회 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2000년 이후로 보면 한국과 아시아 축구 맹주로 묶이는 일본이 3차례 우승한 것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2015년 준우승을 1번 기록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축구 팬들을 중심으로 아시안컵 결과를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금세대로 불리는 현재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과 함께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그간 보여온 태도 때문이다.

경기 내적으로 보면 팬들뿐만 아니라 여러 전문가 사이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이 뚜렷한 전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기 외적으로는 경기 중 적극적으로 지시를 내리지 않는 모습, 4강전 패배 뒤 보인 미소 등 클린스만 감독의 태도가 지적받고 있다.

이미 지난해 3월 선임 이후부터 ‘재택근무’ 논란 등으로 말이 많았던 클린스만 감독이 사퇴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책임론의 칼날은 현장에서 멈추지 않고 정 회장에까지 번지고 있다.

그 이유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정 회장 등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경기 내적으로나 경기 외적으로 비판을 받으면서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 회장도 아시안컵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1월 새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으로 당시 기술발전위원장인 미하엘 뮐러를 선임하고 신규 국가대표팀 감독 인선 작업을 시작했다.

전력강회위원장에 외국인이 선임된 것은 뮐러 위원장이 처음인 만큼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전력강화위원회가 다수의 감독을 후보로 두고 검증 및 접촉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정 회장의 의중이 크게 작용해 새 후보로 오른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이 최종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뮐러 위원장이 애초 제시한 선임 조건에 맞지 않았던 데다 뮐러 위원장도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 감독 선임 이유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했다.

팬들은 이미 클린스만호의 성과와 별개로 감독 선임 체계가 무너진 것에 우려를 표해왔다. 여기에 아시안컵 결과가 더해지며 정 회장도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격히 커졌다.

정 회장의 독단적 의사결정으로 대한축구협회가 운영된다는 비판은 항상 제기돼왔던 문제다. 대표적으로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3월 승부조작 가담자 48명을 포함한 징계자 100명에 관한 사면조치를 내린 사태가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점을 자축하고 축구계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승부조작에 가담한 인물들을 사면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를 들었다.

게다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과 유사하게 사면조치의 부적절함과 별개로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됐다. 대한축구협회가 자체 공정위원회 규정에서 사면권 발의를 대한축구협회장의 고유권한으로 정하고 있는 점, 이사회 비상근 이사들 가운데 일부는 사면 안건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알려진 점 등이다.

결국 사면 논란은 발표 3일 만에 전면 철회되는 ‘촌극’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정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저와 대한축구협회에 가해진 질타와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보다 나은 조직으로 다시 서는 계기로 삼겠다”고 사과했다.

아시안컵 우승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시절부터 14년째 축구 행정가로서 활동해 온 정 회장이 축구협회장 임기를 마무리하기 전 마지막 큰 성과를 남길 기회였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정 회장의 협회장 임기는 2025년 1월 끝난다.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7일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놓고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 등을 고려하면 클린스만 감독에게 계속 대표팀을 맡기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수십억 원대 위약금이 들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0-2로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자진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와 관련해 한준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YTN과 인터뷰를 통해 ‘감독 책임론’을 언급한 상황이다.

다만 클린스만 감독을 대한축구협회가 경질하면 위약금이 남은 2년 반가량의 임기를 고려했을 때 최대 60억 원에 이른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대구시장은 8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약정이 그러하다면 위약금이라도 주고 해임해라”며 “단 위약금은 잘못 계약한 축구협회장이 물어 내라”고 정 회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한다면 이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주도한 정 회장 등의 인선 실패를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 감독 경질에 끝나지 않고 정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 회장이 재계 순위 29위, 공정자산 15조 원이 넘는 HDC그룹 총수로 여러 현안을 챙기고 있는 만큼 축구협회장으로서 논란이 지속되면 경영자로서 행보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떠오른다.

정 회장은 2013년 3월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취임사를 통해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행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정 회장은 당시 취임사에서 “귀를 열고 더 많은 분께 다가가 겸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겠다”며 “소통은 큰 그릇이 돼 우리 모두의 꿈을 담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52대부터 54대까지 협회장을 3연임하고 있다. 이 기간 축구 국가대표팀은 세 차례 월드컵 본선에 모두 진출해 한 차례 16강에 올랐다. 아시안컵도 세 차례 출전해 준우승 1회, 8강 1회, 4강 1회의 성적을 거뒀다. 장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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