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남부 벨트’의 핵심 수원 지역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명(비이재명)계인 박광온(3선·경기 수원정) 전 원내대표를 컷오프(공천 배제) 했다. 소위 ‘비명횡사’ 바로 그 다음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 수원정 후보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제20·21대 총선에서 수원 갑·을·병·정·무 5개 선거구를 모두 석권했던 민주당으로부터 수원정만큼은 탈환할 적기라는 판단에 따른 행보로 보인다.

박광온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박광온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박광온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당의 경선 결과를 승복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하위 20%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부족한 제 탓”이라며 “총선은 통합해야 이기고, 분열하면 패배한다. 어떻게든 당의 통합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번 경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주신 영통구 시민들과 당원 동지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주당의 견고한 통합과 담대한 변화를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을 찾겠다”고 했다. 전날 박 전 원내대표는 김준혁 한신대 교수와의 경선에서 패하면서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박 전 원내대표는 대표적인 비명계 의원으로 꼽힌다. 원내사령탑에 지역구까지 잘 다져놨던 현역 의원이 이른바 ‘왕(王)수박’으로 찍혀 컷오프된 것이다. 수박은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초록색)의 겉과 달리, 속은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빨간색이라는 표현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배신자 이미지를 담고 있다.

박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경기 수원정은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광교신도시 생활권으로 고소득층 30·40대가 많이 거주해 민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가 많다. 실제로 박 전 원내대표는 지난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이어왔다. 제20·21대 총선 때는 경기도 행정1부지사 출신인 박수영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와 신인이었던 홍종기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를 상대로 압승하기도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 교수는 이번에 경기 수원정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됐다. 사진은 지난 1월 5일 오후 수원시 장안구 국민의힘 경기도당사에서 열린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 교수는 이번에 경기 수원정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됐다. 사진은 지난 1월 5일 오후 수원시 장안구 국민의힘 경기도당사에서 열린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경기 수원정 탈환을 위한 공세에 나선 모양새다. 한 위원장은 ‘수원정 터줏대감’ 박 전 원내대표가 컷오프된 바로 다음 날인 이날 경기도 수원시를 방문했다. 한 위원장은 이수정 경기 수원정 국민의힘 후보와 함께 수원 영통구 거리 인사에 나섰다. 이들은 지역구민을 위한 ▲서울 메가시티 특별법 제정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장 ▲영통구 복합청사 신축 ▲반도체 지원 등 공약을 소개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4년 동안 민주당을 뭐했나.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이라며 “선거 끝나고도 3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우리 이수정 후보와 반드시 해내겠다”고 말했다. 이후 한 위원장은 이 후보와 함께 단상에 오르거나 셀카를 찍는 등 이 후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박 전 원내대표의 컷오프 소식을 호재로 보고 있다. 경기 수원정 총선이 할만해졌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지난달 17~19일 실시하고 20일에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기 수원정 선거구 거주민 중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에서 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4.3%포인트), 박 전 원내대표가 38% 지지율로 이수정 국민의힘 후보보다 8%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박 전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떨어진 만큼, 이 후보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해진 형국이다. 당 관계자는 “박광온 의원이 워낙에 지역을 잘 관리한 탓에 솔직히 부담도 있었다. 이번엔 개딸(이재명 강성 지지층)들이 알아서 치워준 것”이라며 “박광온 의원을 꺾은 친명계 원외 인사인 김준혁 당 전략기획부위원장과 맞붙는다면 ‘온건파 중진’보다 ‘개딸 지지를 받는 찐명(진짜 이재명계)’과 싸우는 게 구도상 훨씬 낫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도 “박광온 없는 경기 수원정은 이수정 후보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해볼 만한 선거”라며 “안전·여성 전문가인 이 후보가 전국적 인지도가 높은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닌가. 더구나 이 후보가 재직한 경기대도 수원정에 자리한다. 지연·전문성·인지도 3박자가 다 맞는다”고 했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수원정 후보. /뉴스1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수원정 후보. /뉴스1

전문가들은 박 전 원내대표의 컷오프로 이수정 국민의힘 후보가 선거판에서 유리해졌다고 분석한다. 다만 박 전 원내대표의 앞으로 행보를 지켜보면서 총선 전략을 재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탈당이나 무소속 출마 등을 언급하지 않은 만큼, 박 전 원내대표가 김준혁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박광온 의원 컷오프는 민주당에서는 지지층 이완 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경기 수원정에 국민의힘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 소장은 “여론조사에서 보면 박 의원과 이수정 후보가 큰 차이를 보이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오히려 ‘비명횡사’라는 이재명 대표의 공천 논란이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도 있다. 이 부분도 국민의힘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경기 수원정은 민주당 지지 세력이 높은 지역 아닌가. 새로운 인물이자 인지도도 높고, 여성 전문가인 만큼 해볼 만한 상황이 된 건 분명하다”면서도 “다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건 박광온 의원이 공천받은 상대 후보인 김준혁 후보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 앞장서서 도와주겠다고 하면 판세가 또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때 박광온 의원이 직접 선거를 뛰는 것과 선대위원장 등을 맡아서 후보를 돕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거다. 그 틈을 국민의힘이 차별성 있게 전략을 짠다면 이번엔 확실히 해볼 만한 구도”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 결과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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