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사직시 매일 시위' 의정 강대강 대치에 속 타들어가는 환자들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소아환자의 보호자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의대 교수들이 25일부터 집단 사직하고 수술·진료를 축소하기로 결의하면서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정 갈등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암 환자 등 중증 환자들과 현장에 남은 의료진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대학병원들도 하루 적자가 수십억 원씩 쌓이면서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는 등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환자도, 의료진도, 병원도 지쳐가는 상황이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의대 교수들은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앞서 25일부터 사직서를 내고 교수들의 외래 진료, 수술, 입원 진료 근무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다음 달 1일부터는 외래 진료를 최소화해 중증 및 응급 환자 치료에 집중한다. 전의교협은 전국 총 40개 의과대학 중 39개 대학이 참여하는 단체다.

별개 단체인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19개 대학이 참여한 가운데 온라인 회의를 열고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협상의 장을 마련하는 것을 활동 목표로 설정하기도 했다. 의대 교수들의 중지를 모아온 두 단체가 합심해 정부 정책에 분명한 반대의 뜻을 밝힌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행정처분에 대해 의료계와 논의를 이어가기로 해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당초 업무개시명령 이후에도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이번 주부터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방침이었다. 이달 초 가장 먼저 면허정지 사전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의 경우 의견 제출 기한인 25일까지 의견을 내지 않으면 26일부터 바로 면허를 정지시킬 수 있다.

이미 면허정지 사례가 나온 대한의사협회는 차기 회장 선거와 함께 대정부 투쟁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달 20~22일 치러진 의협 제42대 회장 선거 1차 투표의 투표율은 66.46%로 협회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높았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대한 반발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차 투표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한 임현택 후보와 주수호 후보가 25~26일 결선투표에서 맞붙는다. 두 후보 모두 강경파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의료 공백 장기화에 환자들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혈액내과 진료를 받으며 매달 절반 이상은 입원한다는 60대 환자 A 씨는 “담당 교수가 사직한다고 하면 매일 피켓을 들고 시위할 것”이라며 “아침에 진료를 받으러 가면 교수가 ‘환자를 80명씩 봐야 해서 힘들다’며 질문도 잘 받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관악구에서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80대 C 씨는 “아내의 병이 희귀해 여의도성모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해서 한 달에 8번은 서울성모병원에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다”며 “지금까지는 예약 일정이라 괜찮았지만 이제 교수들까지 사직한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진료를 받을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암 환자를 비롯한 중증 환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심한 후유증을 견디면서 독한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치료가 중단되면 병세가 악화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안선영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 이사장은 “지금도 수많은 환자들이 암 진단만 받은 채 수술 날짜를 잡지 못하고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며 “말기 환자분들은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진통제라도 맞으려 요양병원에 간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의사들도 정부도 논의를 하겠다는데 간절하면 잠을 왜 자느냐, 밤을 새워서라도 회의를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25일부터 대학병원 교수들이 철수하면 암 환자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교수 사직시 매일 시위' 의정 강대강 대치에 속 타들어가는 환자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단과 만나면서 정부와 의료계 간에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4층 회의실에서 열린 면담은 오후 4시에 시작돼 약 50분간 진행됐다. 양측의 만남은 전의교협에서 먼저 국민의힘 당사 방문을 제안했다가 한 위원장이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하면서 성사됐다.

한 위원장은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의료계 간 건설적인 대화를 중재해달라는 요청을 (전의교협 측으로부터) 받았다”며 “저는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답변을 드렸다”고 전했다.

한 위원장은 구체적인 면담 내용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전의교협 측과 다시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지켜봐달라”며 “건설적 대화를 도와드리고 문제 푸는 방식을 지켜봐달라”고 말을 아꼈다.

그동안 정부와 의료계 모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면서도 각자의 입장을 굽히지 않아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조 장관은 이달 18일 서울 주요 5개 대형 병원, 19일에는 국립대병원장들과 간담회를 열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의료계에서는 한 위원장이 대화의 장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앞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전공의들에 대한 처벌 방침을 철회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와 토론에 나서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방재승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전공의 조치를 풀어주고 대화의 장을 만들면 교수들도 사직서 제출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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