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대 총선 사전투표 모습.   ⓒ연합뉴스
▲ 22대 총선 사전투표 모습.   ⓒ연합뉴스

‘미디어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늘날 선거와 미디어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미디어오늘은 ‘선거 미디어 리터러시’ 연재를 통해 선거 기사의 이면을 보는 방법을 시민들에게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마지막 여론조사입니다.”

지난 4일 방송사 메인뉴스에선 일제히 마지막 여론조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여론조사 결과를 내보냈습니다. 투표일 6일 전부터 공직선거법에 따라 여론조사를 공개할 수 없는 공표금지 기간에 돌입했기 때문인데요. 여론조사를 공표해선 안 되는 기간은 왜 있는 것이고, 이 기간을 두는 것이 적절할까요. 

여론조사 공표 금지 이유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선거일에 임박해 발표되는 여론조사결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가 공표돼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경우 이를 반박하고 시정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밴드웨건 효과와 언더도그 효과가 거론됩니다. 밴드웨건 효과는 대세를 따라가는 현상을, 언더도그 효과는 특정 후보가 밀릴 경우 응원심리가 발동해 열세인 후보에 투표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즉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가 공표되면 1위 후보 혹은 열세 후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 지난 대선 당시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를 보도한 JTBC 뉴스룸 갈무리
▲ 지난 대선 당시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를 보도한 JTBC 뉴스룸 갈무리

사전투표자들에겐 무의미한 규제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가 발표될 경우 여러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전투표자들 입장에서 보면 형평성이 떨어집니다. 지난 20대 대선 사전투표율은 36.9%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총선 사전투표율은 31.28%로 나타났죠. 사전 투표자들이 총 투표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 총선의 경우 4월3일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됐고, 4월5일 사전투표가 시작됐습니다. 사전투표 첫날 참여자들은 투표 이틀 전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 본 겁니다. 

우려는 가설일 뿐? 영향 받으면 안 될까?

우려되는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았습니다. 2008년 발표된 <선거여론조사의 결과공표금지규정에 대한 헌법적 고찰> 논문은 밴드웨건과 언더도그 효과에 관해 “보편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고, 오히려 마타도어 현상을 범람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설령 우려되는 효과가 있다고 해도 이것이 문제로 볼 수 없다는 반박도 있습니다. 2019년 발표된 <선거여론조사결과 공표금지 조항의 위헌성 및 입법적 대안> 논문은 “유권자는 후보자 또는 정당의 당선가능성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투표를 할 수 있으며, 선거여론조사의 결과는 유권자가 숙고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적인 정치정보”라고 반박합니다. 알 권리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오히려 혼란 부추긴다는 지적도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도입 취지와 달리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4년 발표한 <선거여론조사 등록제 도입의 의의와 개선과제> 보고서는 “금지기간 중 실제 유권자의 지지도 변화를 반영한 조사결과가 제공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가 저해될 뿐만 아니라 선거여론조사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가 떨어지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을 담았습니다. 공표금지 기간 이전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공표금지 기간에도 보도가 가능한데요. 공표금지 기간 중 역전되는 경우 결과적으로 왜곡된 여론조사가 확산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표금지 기간에도 여론조사는 실시되고 있습니다. 공표를 못할 뿐입니다. 각 캠프는 공표되지 않은 여론조사를 토대로 전략을 짭니다. 이 자료는 정치부 기자들도 입수해 취재 배경정보로 활용합니다. 이렇게 퍼져나가다 보면 당원이나 누리꾼들에게도 공유되곤 합니다. 선관위가 단속하고 있지만 온라인 공간의 게시물을 모두 모니터할 수는 없고요.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퍼져나가는 여론조사까지 잡을 수도 없습니다.

이때를 노려 허위 여론조사가 판을 치기도 합니다. ‘XX업체 여론조사 결과 XX후보 역전’과 같은 제목의 지라시가 유포돼 혼란을 주는 식이죠. 이럴 때 기준을 잡아줄 잣대가 돼야 할 진짜 여론조사가 없으니 혼란이 부추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해외에선 어떻게 할까?

세계여론조사협회(WAPOR·이하 협회)가 2017년 13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60%의 국가가 선거 전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을 두고 있습니다. 반면 규제하지 않는 국가는 33%로 나타났습니다.

공표금지 국가가 더 많지만 면면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여론조사협회가 2023년 펴낸 여론조사자유보고서에 따르면 공표기간 규제가 없는 국가는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선진국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 포르투갈, 이란, 쿠웨이트 등은 선거 당일에만 공표를 막고 있고요. 아르헨티나, 멕시코, 체코, 러시아, 케냐, 루마니아 등은 선거 전 2~5일 간 금지하고 있어 한국보다 금지 기간이 짧습니다. 벨기에, 이탈리아, 그리스, 태국 등은 한국보다 금지 기간이 깁니다. 

당초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있었지만 알 권리를 침해하는 과잉 규제라는 지적에 기간을 줄이거나 없앤 국가들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선 한국과 비슷하게 선거일 일주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전면 금지됐습니다만 2001년 이 규정이 ‘유럽인권협약’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습니다. 공표금지 기간 인근 국가에서 프랑스 선거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되면서 규제가 무력화된 측면도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선 2008년 대법원이 여론조사 공표금지가 발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해 선거 당일에만 공표가 금지됐습니다. 이후 선거법을 개정해 공표금지 제도 자체를 폐지합니다.

선관위도 개선 의견 냈다

여론조사 공표를 막는 주체인 선관위도 법 개정 의견을 냈습니다. 2023년 선관위는 여론조사 공표·보도 금지 기간 조항 폐지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선관위 역시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여론조사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공표·보도 금지 기간을 규정하기보다, 이를 폐지해 유권자의 판단·선택을 돕는 참고자료로서 활용성 및 유용성을 인정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관위는 앞서 2016년에도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을 단축하는 법안을 냈습니다. 

그러나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쟁점 현안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현행 여론조사 규제가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기에 법 개정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구동성으로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 기이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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