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가 ‘외형 확장’에 열을 올리면서 10대 대형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가 모두 3조원을 넘었다. 그런데 일부 증권사는 계열사 간 자본거래를 일으켜 실질적으로는 자본 확충이 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사업 영역만 넓어졌다면서 재무 안정성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금융당국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등 규모가 커진 증권사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러스트=정다운
일러스트=정다운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자기자본 상위 10대 증권사 중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대신증권이다. 대신증권 자기자본 규모는 2조8529억원으로, 아직은 10개사 중 가장 작지만 증가 폭은 가장 컸다.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은 전년 동기(2조493억원) 대비 약 39.2% 늘었다. 대신증권은 지난 3월 2300억원 규모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을 통해 3조원대 자기자본을 갖추게 됐다.

대신증권이 빠르게 몸집을 키우는 이유는 10번째 종투사가 되기 위해서다. 종투사 자격 조건인 자기자본 3조원을 충족하기 위해 대신증권은 지난해 대신에프앤아이 등 주요 계열사 5곳으로부터 4800억원의 중간배당을 받았다. 이후 이 배당금을 다시 해당 계열사에 출자했다. 또 업무용 토지 등 자산 재평가를 통해 약 2100억원의 차익을 얻었고, 추가로 서울 을지로 본사 사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종투사가 되면 자기자본 200% 내에서 기업 신용공여, 헤지펀드 신용공여,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 전담중개업무를 할 수 있다.

이미 종투사인 회사도 외형 확장에 힘을 쏟긴 마찬가지다. 한국투자증권은 자기 자본이 8조2118억원으로 전년(6조5528억원)보다 23.5% 늘어나 두 번째로 증가율이 높았다. 한국투자증권 또한 대신증권처럼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자 자격 취득 요건(8조원)을 맞추는 것이 목적이었다. IMA는 2016년 금융당국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목표로 내놓은 제도로, IMA 사업자는 고객에게 원금 보장 조건으로 예탁금을 받아 기업대출·회사채 등에 투자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계열사들의 주식 매각 이익 관련 배당금·유상증자를 통해 몸집을 키웠다. 지난 2022년 3조4000억원 규모 카카오뱅크 지분(27.2%)을 자회사와 모회사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한국투자금융그룹 계열사 합산으로 보면 바뀐 것은 없지만, 어쨌든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을 늘릴 수 있었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일대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뉴스1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일대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이같은 몸집 불리기가 위험 투자와 차입금 증가로 이어져 잠재적인 건전성 위험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위험 요인이 발행어음이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자기자본이 늘어나면서 올해 1분기 말 발행어음 잔액이 1년 전보다는 27.9%, 작년 말보다는 5.7% 늘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1년 이내 단기금융상품이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는 발행어음을 자기자본의 2배까지 발행할 수 있는데, 조달한 자금의 최소 절반 이상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분 및 대출채권 등 기업금융 관련 자산에 투입해야 한다. 최근까지는 기업 대출, 부동산금융 등에 활용해 큰 수익을 올려 왔는데 앞으로는 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일부 증권사는 유동성이 낮고 손실 위험이 크며 실질 만기가 너무 긴 자산을 편입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증권사의 자본 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인 신(新) NCR(순자본비율)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당국은 NCR 100% 이상을 권고하고 있는데,올해 1분기 자기자본 5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 국내 증권사 15곳의 평균 NCR은 585.1%, 자기자본 2조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 10곳은 1471.4%에 달한다. 애초에 증권사의 건전성을 확인할 수 없는 지표라는 분석이 많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형사 NCR 비율이 1000%대로 높아 사실상 마음 놓고 위험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이번처럼) 한국투자금융그룹과 대신금융그룹이 실질적인 현금유입 없이 계열사 간 자본거래를 통해 몸집을 불린 것은 ‘이례적인’ 자본 거래”라며 “자본의 질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아 자칫 재무 안전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우려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종투사 제도를 도입한 지 10년 정도가 됐는데, 다른 중소형 증권사에 비해 크고 튼튼하지만 그만큼 업무 범위가 넓다 보니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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