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기타 선생님이 종이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오선인가? 악보를 그리는가 싶어 살짝 긴장했다.

선생님은 기타 레슨 때 종종 음악 기초 이론을 설명한다. 그러면 학창 시절 배운 기초 이론마저 까먹은 지 오래인 나는 부득이 긴장하곤 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종이에 그린 것은 흔히 본 오선이 아니었다. 선이 여섯 개였다. 선생님은 이어 줄에 겹쳐 숫자와 O를 적었다. 언뜻 암호 같다. “이게 타브(TAB) 악보라는 거예요.”

타브 악보는 해당 현을 의미하는 선 위에 짚어야 할 프렛의 숫자를 표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기타 4번 줄의 5번 째 프렛을 짚어야 하는 경우, 악보 해당 줄에 숫자 ‘5’를 표기한다. 오선 악보 읽기에 서투른 초보자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생님이 그린 악보를 손가락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6번 줄은 O라고 적혀 있으니, 개방현. 5번 줄과 4번 줄엔 2라고 적혀 있으니 각각 2번째 프렛. 3번 줄에 1이라 적혀 있으니, 1번째 프렛.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잡았던 2번째 프렛을 중지와 약지로 고쳐 잡고 다시 검지로 1번째 프렛 3번 줄을 잡았다. E코드였다. 아는 코드인데도 타브 악보로 보니 새로웠다.

선생님이 적어준 악보를 따라 몇 가지를 더 연습해봤다. 더듬더듬 줄을 찾아가고 줄을 잡았던 손가락을 바꾸기를 몇 차례. 이제 나는 타브 악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앗싸!

가만히 있을쏘냐. 자랑해야지. 레슨이 끝나고 금정연 작가에게 연락했다. 최근 그의 책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을 통해 그가 기타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타브 악보 볼 줄 알아요?” “네, 볼 줄은 알아요.” “왜죠?”

자랑하려고 연락했는데, 볼 줄 안다는 말에 ‘왜죠?’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름 진땀 빼며 익혔는데, 독학으로 익혔다는 그의 말에는 괜히 약이 올랐다. 살짝 의기소침해지려는데, 금 작가가 요즘엔 기타 연습을 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꾸준히 한다는 거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순간 다시 우쭐해졌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서 내가 가장 오래 기타를 배우고 있다.

보통 한 가지 일을 계속하려면 어느 정도는 그에 대한 성공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성공 경험에서 재미를 느낀다. 그런데 문득 기타를 배우며 내가 느끼는 재미가 꼭 기타를 잘 치는 데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를 배우며 나는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다. 타브 악보 보는 법을 알게 된 것도 그중 하나다. 우리말로 도레미파솔라시도에 해당하는 음계를 영어로는 CDEFGABC로 표현하는 것도 알게 됐다. 덕분에 ‘Sonata No.3 in F Major’가 소나타 제3번 바장조라는 것도 안다.

기타 좀 못 치면 어떤가. 세상 무지렁이가 이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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