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저축은행 인수 규제 완화 만지작

금융 당국이 수도권 저축은행 인수합병(M&A)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여파로 재무 건전성이 악화한 저축은행을 자본력을 갖춘 금융사가 선제적으로 인수해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다.

3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수도권 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부실 우려(9~10%) 이상이어도 앞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면 규제 예외를 확대 적용해 비수도권 저축은행의 M&A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비수도권 저축은행 대주주가 수도권 저축은행을 M&A할 경우 인수 후 영업 구역이 3곳 이상이 되면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인수 대상의 BIS 비율이 9~10% 이하로 부실 우려 기준에 해당하면 영업 구역 제한 규정에 예외를 둬 M&A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영업 구역은 수도권 2개(서울, 인천·경기)와 비수도권 4개(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강원, 광주·전라·제주, 대전·세종·충청) 등 6개로 나뉜다.

금감원은 BIS 비율이 부실 우려 이상이어도 향후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수도권 저축은행에 이 같은 예외 조항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BIS 비율이 부실 우려에 근접한 수도권 저축은행들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BIS 비율이 부실 우려 기준에 근접한 수도권 저축은행은 페퍼저축은행(11%), 제이티저축은행(11.4%), 오에스비저축은행(11.6%) 등이다.

수도권 저축은행 인수 규제 완화 만지작

5분기 연속 적자…역대급 실적 부진

9.6조 달하는 사업장 PF가 발목

선제적 안전판 마련 목소리 커져

시장에선 “매물 누가사나” 여론도

금융감독원이 수도권 저축은행 인수합병(M&A)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저축은행의 실적 부진이 길어지면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간 M&A 문턱을 낮춰 시장 내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촉발시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예방하려는 목적이 크다.

3일 저축은행중앙회 등에 따르면 저축은행 업계는 올 1분기 1543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다섯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이 1년 넘게 분기 적자를 이어간 것은 2011년 발생했던 ‘저축은행 사태’ 이후 처음이다.

실적 악화에 신용등급도 하락세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저축은행 업계 자산 규모 2위인 OK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을 BBB(안정적)로 한 단계 내렸고, 나이스신용평가는 자산 규모 6위 페퍼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저축은행 업계의 실적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9조 6000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부실해지는 사업장이 늘면서 대규모 충당금을 쌓아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PF 연착륙 대책’에 맞춰 부실 PF 펀드를 조성하고 경·공매를 검토하는 등 ‘부실 털어내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PF 정리가 더 늦어지거나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일부 저축은행의 부실화는 막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지난해 실적이 악화되기 전까지 수년간 흑자를 내며 돈을 벌어들인 터라 대다수 저축은행의 충격 흡수 능력은 충분하다”면서도 “은행의 건전성과 별개로 ‘저축은행에 또다시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면 전혀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맞을 수 있다”고 전했다.

금융 당국은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 이미 저축은행 M&A 문턱을 한 단계 낮췄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수도권 저축은행이 부실 우려 기준에 해당하면 M&A 시 영업 구역 제한을 완화했다. 특히 비수도권의 경우 건전성 수준과 무관하게 인수 대상을 4개까지 늘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 이후 현재까지 저축은행 매각 거래는 단 한 건도 성사되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예외 조항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지적해왔다. 부실 우려 기준에 해당하는 저축은행은 당국의 관리를 받아야 할 정도로 재무 상황이 나쁘기 때문에 매수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황이 좋은 때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시기라면 거래가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지방과 달리 수도권은 건전성 기준도 따지는데 당국에서 ‘부실 낙인’까지 찍어둔 매물을 누가 사가겠나”라고 반문했다.

금융 당국이 영업 구역 예외 조항 적용 대상을 부실 우려 이상으로 확대하면 잠재 매물이 더 늘어난다. 수도권 저축은행 중 지난해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10%에 근접한 곳은 페퍼저축은행(11%), 제이티저축은행(11.4%), 오에스비저축은행(11.6%) 등이다. 금융권에서는 규제 완화를 계기로 금융지주사 등 자본력 있는 금융사가 저축은행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규제 완화에 따른 저축은행 대형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솔로몬저축은행이 2002년 골드저축은행, 2005년 한마음저축은행, 2006년 나라저축은행, 2007년 한진저축은행 등 부산·경기·호남 지역 저축은행을 잇달아 인수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섰지만 부실 사태를 맞으며 2013년 결국 파산했기 때문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에 비해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 등을 엄격하게 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대형화 자체만으로 부실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저축은행 문제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는 만큼 규제 완화에 앞서 저축은행들의 내부통제나 리스크 관리 기준을 높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의 PF 대출 중심 영업 관행 개선 방안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총자산 내 부동산 PF 비중은 저축은행이 16.5%에 달한다. 캐피털(10.9%)이나 증권(4.1%), 보험(3.8%)에 비해 압도적으로 비중이 높다. 당국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저축은행 전체 실적이 지나치게 출렁인다”면서 “PF 대출에 치중하는 영업 방식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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