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71년간 SK 가치 쌓아 온 구성원 명예 상처 입힌 판결”

2세 승계 당시 최재원 등 형제 희생과 양보로 경영권 분쟁 없어

노소영 관장, 3세 승계구도에서 자녀에 힘 실어줄 재산 확보 전력

사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은 SK그룹의 과거 및 미래 승계와도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뜨겁다.

지난달 30일 이뤄진 이혼소송 2심 판결은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에서 최태원 회장으로의 경영승계 과정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한편, 항소심 판결 내용이 대법원까지 가서도 유지될 경우 최 회장 이후의 경영승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최 회장은 3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해 처음으로 이혼소송과 관련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이번 판결로 지난 71년간 쌓아온 SK그룹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어 온 구성원들의 명예와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어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이날 최 회장의 발언에는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을 시작으로 오너 일가와 임직원 등 SK그룹 구성원 전체가 오랜 기간 쌓아온 가치를 ‘이혼 부부의 분할 대상 재산’으로 치부한 2심 판결의 부당함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2세 승계과정서 최태원 회장에 몰아준 친족 지분까지 분할 대상

1998년 최종현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 이후 창업 2세 형제들은 가족회의를 열고 최태원 회장을 후계자로 밀어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SK그룹의 전신인 선경 창업주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형인 최종건 회장으로, 슬하에 최윤원, 최신원, 최창원 등 3형제를 두고 있었다. 선대회장이 유언 없이 별세한 상황에서 창업주 직계인 3형제가 정통성을 앞세울 경우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장손인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이 “우리 중에 태원이가 제일 뛰어나니 밀어주자”고 제안하면서 형제간 화합을 이끌어냈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도 이에 호응해 SK 계열사들의 주요 지분 상속을 포기했고, 결국 최태원 회장은 당시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던 SK상사 지분 2.85%를 모두 상속받아 대주주 지위로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최 회장은 지분 매입 및 인수‧합병을 통해 2015년 그룹 지주사 SK(주) 지분 23.4%를 보유하게 됐으며, 2018년에는 경영권 분쟁 없이 자신에게 경영을 맡겨준 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1조원 상당의 SK(주) 지분 5.11%를 23명의 친족에게 나눠줬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총액을 4조115억원으로 추산하고 그 중 35%를 노 관장에게 분할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35% 중 현재 노 관장이 보유한 재산을 공제한 1조3808억원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이다.

재판부가 추산한 공동재산에는 최재원 수석부회장 등 형제들이 최 회장에게 양보한 지분도 포함돼 있다. 또, 2018년 최 회장이 친족들에게 나눠준 주식까지 공동재산에 포함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안정적인 그룹 지배력 유지 차원에서 최 회장에게 집중된 오너 일가의 지분을 모두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 가문에게 있어 기업 지배력을 좌우하는 지분은 ‘가문 공동재산’ 개념이지 ‘부부 공동재산’으로 봐서는 안된다”면서 “GS그룹처럼 다수의 오너 일가가 지분을 나눈 상태에서 총수를 추대해 기업을 이끌도록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삼성, LG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우는 가문의 합의에 따라 총수에게 지분을 집중해 지배력을 안정화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SK도 그 경우”라고 지적했다.

2심 판결, 대법원에서도 유지될 경우 지배구조 '흔들'

최 회장 측이 대법원 상고를 예고한 상태지만,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까지 유지될 경우 SK그룹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 회장 재산에서 2조원 이상의 SK(주) 지분을 제외하면 1조3808억원을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룹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SK실트론 지분 29%(6000억원 추산) 매각, SK(주)로부터의 배당 확대 등 여러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지급이 늦어질 경우 천문학적인 지연이자가 붙는다는 점에서 결국 SK(주)의 지분을 건드리는 게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나온다.

지분 자체를 분할하건 지분 일부를 매각하건 최 회장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낮아질 경우 SK그룹에 대한 지배력도 취약해진다. SK그룹은 이미 20년 전 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은 전례가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 자녀. 왼쪽부터 최윤정 SK바이오팜 신임 사업개발본부장, 최민정 씨, 최인근 SK E&S매니저. ⓒSK

다만 노 관장 측도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은 언젠가 최 회장과 자신 사이의 자녀들(최윤정, 민정, 인근) 중 하나가 이어받아야 할 가업이라는 점에서다.

실제 노 관장 측 법률대리인은 2심 판결 이후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SK(주)의 우호 지분으로 남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 노 관장은 다른 법률대리인을 통해 우호 지분 관련 발언은 대리인 중 한 변호사의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소송 와중에 ‘공식화’하기 곤란할 뿐 그게 노 관장의 내심일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미 많은 재산을 가진 노 관장이 단지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혹은 증오심 때문에 SK그룹을 무너뜨리기 위해 소송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소송의 배경은 최태원 회장 이후의 승계구도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3세 승계, 노 관장-김 이사장 자녀 간 분쟁 가능성

6·25전쟁을 전후로 창업한 국내 재벌기업들은 현재 대부분 오너 3, 4세가 이끌고 있는 것과 달리 SK그룹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은 오너 2세다.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에서 동생인 최종현 회장을 거쳐 지금의 최태원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겨졌다.

국내에서는 막대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오너 4세까지는 경영권을 대물림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오너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20년 대국민 사과에서 자식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SK그룹은 상황이 다르다. 최태원 회장은 올해 64세로 아직 젊은 편이지만, 재계 항렬로 보면 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과 같은 창업 2세대다. 아직 한 차례 더 오너 경영 체제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아직 왕성한 경영활동을 할 나이인 최태원 회장이지만 자신 이후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고민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블룸버그와의 안터뷰에서 승계 관련 질문에 “만약 제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누가 그룹 전체를 이끌 것인가, 승계 계획이 필요하다”면서 “나만의 계획이 있지만,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 생활이 이어졌다면 둘 사이의 자녀 세 사람 중 한명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수순을 예상할 수 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최 회장이 노 관장과 이혼하고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재혼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최 회장과 김 이사장 사이의 자녀가 후계 구도에서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법정 상속 비율에 따르면 배우자는 1.5, 자녀는 1의 비율로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 재혼을 전제로 김 이사장의 상속 비율 1.5에 최 회장과의 딸 몫으로 1을 더해 2.5에 해당하는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혼 이후 노 관장의 상속 비율은 0이 된다. 노 관장과 최 회장 사이의 자녀 셋의 상속 비율은 각각 1씩 총 3이 된다.

김 이사장 측의 상속 비율이 노 관장 측을 앞설 여지도 있다. 김 이사장은 전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을 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 회장이 아들을 친양자로 입양할 경우 상속인에 포함될 수 있다. 이때의 상속 비율은 김 이사장 측이 3.5로 노 관장의 세 자녀(3)를 넘어선다.

노 관장으로서는 최 회장으로부터 분할 받은 재산으로 SK(주) 주식을 매입해 일정 지분을 확보해 놓거나, 후일 벌어질 수 있는 경영권 다툼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실탄’을 비축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형제들의 희생과 양보로 순탄하게 이뤄진 SK그룹 2세 승계과정과 달리 미래 SK그룹의 오너 3세 승계 과정은 상당히 복잡해질 수 있다”면서 “최 회장이 후계 구도에 고민을 내비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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