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GM·포드 등 주요 제조사, 생산·투자 속도조절 잇단 발표

‘후방산업’ 배터리업계, 업황 영향에 촉각…”중장기적으론 성장 지속”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에 미국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잇달아 전기차 생산·투자 속도조절 방침을 내놓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배터리업계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최근까지 프리미엄 차종 중심의 배터리 판매 호조와 신규 라인 가동 등으로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냈지만, 전방산업인 완성차업계 업황이 부진하면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도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수요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당장 올 4분기와 내년 대외 경영환경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돼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다만 전기차 산업의 이 같은 움직임이 일시적 숨 고르기에 불과하며, 전동화 전환이라는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인 만큼 배터리업계에도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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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 이어 GM·포드까지 “속도조절”…내년 美 대선 향방도 관건

29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어닝 미스’로 불릴 만큼 부진한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고금리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전기차 수요 부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경제 조건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 있다”며 전기차업계가 당면한 현실을 강조했다.

이날 머스크는 출시를 준비 중인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 양산과 수익 창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싶다고 말했고, 멕시코 생산공장(기가팩토리) 건립 추진 일정도 늦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테슬라발(發) 실적 충격은 한국 증시에까지 영향을 미쳐 이차전지 관련 종목 하락으로 이어졌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전통 자동차 제조사들도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 장기화에 따른 부담에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까지 겹치자 최근 연이어 전기차 생산·투자 속도조절 방침을 내놨다.

GM은 최근 예상치를 웃도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도 전기차 수요 둔화 추세를 반영해 작년 중반부터 내년 중반까지 2년간 전기차 40만대를 생산한다는 애초 계획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미시간주에 건설하기로 한 전기차 공장 가동 시점도 1년 미루기로 했다.

포드는 예상치를 밑도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앞서 계획했던 전기차 투자액 중 120억달러(약 16조2천600억원)를 축소하고 SK온과 합작해 건설 예정인 켄터키 2공장 가동도 연기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 주요 완성차업체들의 이 같은 계획이 연이어 알려지자 지난 25일과 26일 한국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 이차전지 관련주들의 주가가 눈에 띄게 하락하며 시장 전체가 휘청거렸다.

미 전미자동차노조 파업
미 전미자동차노조 파업

[AP=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내 배터리업계, 상황 예의주시…”내년 환경 녹록하지 않을 것”

각국 주요 완성차업체를 주요 고객사로 둔 국내 배터리업계도 이런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고금리 지속과 경기 성장률 둔화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유럽 지역 전기차 수요 회복 부진, 주요 완성차업체의 전동화 속도조절 등이 매출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배터리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5일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 4분기와 내년의 경영 환경은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LG에너지솔루션이 올 3분기 작년 동기 대비 40.1% 증가한 7천312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역대 분기 최고 실적을 올린 점을 고려하면 보수적 전망을 내놓은 셈이다.

여러 대외 변수를 고려하면 올 4분기 매출 성장 폭은 3분기 대비 줄고, 내년 수요는 기대치를 밑도는 수준으로 감소해 내년 매출 성장률은 올해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내다봤다.

다만 전기차업계의 이 같은 변동성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제품 경쟁력 강화, 스마트팩토리 추진, 밸류체인(가치사슬) 확보 등 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삼성SDI도 지난 26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성장세 둔화 우려에 대해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단기 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여러 방면으로 확인한 결과 중장기 전기차 수요 성장세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라며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SDI의 지난 3분기 매출은 작년 동기 10.8% 증가한 5조9천481억원, 영업이익은 12.3% 감소한 4천96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비상장사인 SK온은 아직 3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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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치러질 미국 대선도 배터리업계가 주시하는 주요 변수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로 나서 승리할 경우 민주당 조 바이든 정부가 역점으로 추진해 온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적은 전기차 특성상 자동차 생산 인력 감소가 예상된다는 점 등을 부각해 미국 자동차업체 노동자들의 표심까지 노리고 있다.

북미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국내 배터리업계 입장에서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축소 등 부정적 결과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경기침체 장기화와 수요 위축, 주요 완성차 제조사들의 전기차 사업 속도조절, 내년 대선 결과에 따른 미국 정부의 전기차 정책 변화 가능성 등이 배터리업계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전기차 시장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국의 고금리 기조에 따라 올 하반기 글로벌 전기차 시장 둔화 추세가 뚜렷해졌지만, 각국 정부가 여전히 친환경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중장기 전동화 추진 의지는 여전한 만큼 전기차·배터리 시장 성장세 지속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관측이다.

◇ “중장기적으론 시장 성장”…연이은 ‘배터리 수주’ 낭보도

국내 배터리업계가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로부터 연이어 굵직한 수주를 따내고 있는 만큼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 국면을 무리 없이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달 초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도요타와 연간 20기가와트시(GWh) 규모로 전기차 배터리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합작공장(JV)을 제외한 LG에너지솔루션의 단일 수주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제품은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생산된다.

삼성SDI도 현대자동차와 처음으로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수주 낭보를 전했다. 2026∼2032년 현대차가 유럽에서 생산·출시할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이다. 삼성SDI가 헝가리 공장에서 생산하는 6세대 각형 배터리 P6가 공급되며, 물량은 전기차 50만대분 수준으로 알려졌다.

후발주자인 SK온 역시 여러 글로벌 완성차업체와 신규 수주를 놓고 논의 중이며, 일부는 올해 중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전기차 생산·투자 속도조절이 결과적으로 국내 배터리업계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SK온과 포드의 켄터키 2공장 생산 연기 방침이 한 예로 거론된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예상만큼 강하지 않은 전기차 수요 환경에서 포드 역시 UAW 파업에 따른 손실 확대를 고려해 투자 속도를 조절한 것”이라며 “건설 일정은 유지한다고 한 점을 보면 가동 시점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기존 2026년 양산에서 소폭 연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SK온은 포드 외에도 현대차와 합작공장까지 2025∼2026년 총 162GWh 규모의 4개 공장을 연이어 가동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며 “켄터키 2공장을 2027년 이후 가동한다고 보면 SK온의 손익 관점에서는 오히려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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