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해진 기업대출 심사…회사채 금리도 반영

가계대출 확대에 부담을 느낀 시중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기업대출을 늘리는 가운데 대출 심사 때 회사채금리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급을 따져보는 등 신용평가 모형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계기업·취약차주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강화가 한층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최근 기업대출 관련 신용평가 모형에 적용하는 ‘산업 조기 경보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해 현장에 적용했다. 기업의 재무·사업 리스크와 머신러닝 기반의 경제 모형 등을 결합해 특정 산업 등의 부실 위험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구체적으로는 신용평가에 적용하는 재무 정보와 경제지표 등을 대폭 늘렸다. 신용평가 모형에 반영하는 재무 정보의 경우 기존의 상장사 재무제표 외에 전체 법인사업자 재무제표를 추가했다. 또 신용공여·주가 등 기존에 활용하던 평가 항목 외에 국민연금·휴폐업·행정처분 정보 등도 평가에 이용하기로 했다. 위험 산업을 골라내는 것은 물론 우량 성장 산업을 파악하기 위해 회사채금리·통화량·재고율 수준 등 새로운 경제지표 4500여 개 항목을 추가 반영해 산업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실시한다. 이 외에 산업별 ESG 등급과 탄소 배출량 정보를 활용해 산업별 글로벌 경제 흐름에 발맞춘 대응 수준도 파악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산업별 위험 신호를 포착하는 데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을 적용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예를 들어 부채비율이 높은 조선업의 경우 업종 특성을 학습해 부채비율이 400%를 넘어도 위험 신호로 인식하지 않는 식이다. 통상 제조업의 경우 부채비율이 200%를 넘기면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던 것에서 한층 정밀화된 평가가 가능해진 것이다.

국민은행도 지난해 신용평가 모델 파트를 부서로 격상한 후 신용평가 데이터 관리와 모형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취약 섹터를 발굴하고 리스크 대비를 적시에 할 수 있도록 정밀하고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신한은행 역시 신용평가 모형 고도화를 통해 대출 변별력을 높이고 영업점에서도 연체 관리 등 건전성 관리에 힘쓰고 있다. 우리은행 또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자체 기업 진단 시스템을 꾸준히 개선해 기업의 부실 가능성을 선제 포착할 수 있도록 운영 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대출 건전성 악화와 자산 가격 하락이 리스크로 떠올랐다”며 “신용평가 개발 등 리스크 관리를 기반으로 한 성장이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기업대출 수요가 증가한 가운데 국내 은행의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해 8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 원화 대출 연체율은 0.47%로 지난해 같은 기간(0.27%)과 비교해 0.20%포인트 오르는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체율이 계속 상승하는 모양새다. 특히 중소기업과 중소법인 대출 연체율이 같은 기간 각각 0.25%포인트, 0.21%포인트 뛰었다.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도 올해 초 598조 2095억 원에서 지난달 말 623조 3403억 원으로 25조 1309억 원(4.20%) 늘며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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