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로 글로벌 기업들 잇달아 투자 재조정

현대차‧기아 “전기차 시장 우상향 예상…전동화 전략 차질 없다”

코로나19 시절 공격적 투자로 세계 3위 오른 ‘정의선 뚝심’ 시즌 2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오른쪽)과 장재훈 현대차 사장(왼쪽)이 7월 13일(현지시간) 영국 최대 자동차 축제인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Goodwood Festival of Speed)에서 아이오닉 5 N(IONIQ 5 N) 공개행사를 진행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오른쪽)과 장재훈 현대차 사장(왼쪽)이 7월 13일(현지시간) 영국 최대 자동차 축제인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Goodwood Festival of Speed)에서 아이오닉 5 N(IONIQ 5 N) 공개행사를 진행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세계적인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로 글로벌 기업들이 잇달아 투자 재조정에 나선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직진’을 선언했다. 코로나19 시절 공격적인 신차 출시로 세계 3위에 오르는 성과를 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뚝심이 전기차 전환의 과도기에도 빛을 발할지 관심이다.

30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아와 기아는 기존 계획한 EV 전환 투자계획을 최근 시장 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서강현 현대자동차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 26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내년 전기차 판매계획이 기대했던 것보다 낮아질 수 있지만 급하게 전기차 판매를 전략적으로 줄이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서 부사장은 “지금 잠깐 장애물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전기차쪽으로 확대되는 건 맞고, 전기차 시장이 우상향 곡선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며 “당장의 장애물 때문에 보수적 시각으로 전기차 생산 기회를 늦춘다던가, 개발을 늦춘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에 건설 중인 전기차 전용 공장 가동 시점에 대해서도 최근의 전기차 시장 상황의 영향을 받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서 부사장은 “미국공장은 IRA 혜택을 받는 측면에서 의사결정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인 만큼 2024년 하반기 양산 일정 자체를 늦출 계획은 현재까지 없다”면서 “일정을 예정대로 지켜 우리 차를 가지고 경쟁하면서 다른 업체들이 받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 역시 신차 출시나 설비 투자 등 전기차 관련 사업계획을 기존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정성국 기아 IR담당 상무는 27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내년 2분기 말 EV3, 내년 3분기 말 EV4를 출시할 예정”이라며 “광주 전기차 전용 라인은 연간 생산능력 15만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 시장이 소형차 위주로 중심이동하는 데 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에 대해서도 “차량의 마인지 사이즈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케일이라든지 사용의 특성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높은 효율로 볼륨 모델을 출시하게 되면 전기차에 있어서도 내연기관차랑 비슷한 정도 수준의 수익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테슬라 모델Y 생산라인 모습. ⓒ테슬라코리아 테슬라 모델Y 생산라인 모습. ⓒ테슬라코리아

이같은 현대차‧기아의 움직임은 최근 전기차 시장 분위기와 다소 차이가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EV볼륨즈는 올해 세계 전기차 판매량 예상치를 기존 1430만대에서 1377만대로 낮춰 잡았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시장이 얼리어답터 중심에서 일반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충전 인프라와 가격에 대한 저항이 커져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급’, ‘고성능’ 지향이었던 전기차 라인업도 가격 부담을 낮춘 소형차 쪽으로 중심이동하면서 제조사들의 수익성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완성차 업체들은 기존 공격적으로 제시했던 전기차 관련 투자 계획을 잇달아 재조정하고 있다. 당장 전기차 시장 세계 1위 업체인 테슬라부터 멕시코 신공장 가동 시점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빅3 자동차 업체 중 전동화 전환에 가장 적극적이던 제너럴모터스(GM)도 미국 미시간주 전기 픽업트럭 공장 가동을 1년 연기하기로 한 데 이어, 일본 혼다와 진행하던 저가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까지 철회했다.

포드는 최근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생산하는 미시간주 공장을 3교대 근무에서 2교대 체제로 바꿨다. 또, 기존 발표했던 전기차 투자액 가운데 120억달러(약 16조2000억원)를 줄이기로 했다. 이와 연동해 SK온과 켄터키주에 짓기로 한 두 번째 배터리 공장 가동도 늦출 계획이다.

세계 1위 완성차 업체 독일 폭스바겐은 2026년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차세대 전기차 ‘트리니티’를 생산할 신규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최근 포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경기도 화성 기아자동차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서명 퍼포먼스를 마친 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경기도 화성 기아자동차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서명 퍼포먼스를 마친 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현대차‧기아의 ‘직진 선언’은 과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적극적인 투자를 집행해 좋은 성과를 낸 전례와 오버랩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국내외에서 판매량이 많은 볼륨 모델들의 풀체인지 주기가 찾아왔었다. 당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잇달아 긴축 정책을 발표하며 동면(冬眠)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신차를 출시해도 판매량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부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신차 출시 시점을 미루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신차 슈퍼사이클’ 효과를 노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은 ‘위기 속 기회’를 노렸다. 그는 2020년 3월 현대차그룹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시적인 사업 차질은 불가피하겠지만 다양한 컨틴전시 계획을 수립해 당면한 위기 극복은 물론 이후에도 조기에 경영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일사불란하게 비상 대응에 최선을 다하면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그룹의 기초체력이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신형 투싼, 아반떼, 스타리아, 제네시스 G80, GV70, 등 신차들을 예정된 스케줄대로 출시했다. 기아 역시 쏘렌토, 카니발, K8 등 볼륨 차급에서 신차를 잇달아 시장에 내놨다.

정 회장의 전략은 적중했다. 펜데믹 상황이 끝나기도 전에 자동차 시장이 급반등했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보복 소비’는 자동차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지난해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시장에서 ‘자동차를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 벌어졌다. 경쟁력 높은 신차들을 구비해 놓은 현대차‧기아가 최고의 수혜를 누렸음은 물론이다.

이는 현대차‧기아가 폭스바겐, 토요타에 이어 글로벌 판매량 3위에 오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고급차와 SUV 위주의 판매믹스 개선과 ‘제값 받기’ 정책으로 판매량 뿐 아니라 수익성도 좋아지면서 지난해와 올해 현대차‧기아는 매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해나가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의 불확실성 증대에도 불구, 현대차‧기아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는 이유도 당시의 위기돌파 경험에서 비롯된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사업 전략은 ‘소나기는 피해 가는’게 맞다. 시장 위축 전망이 명확하면 보수적 스탠스를 취하는 게 정석”이라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홀로 공격적 투자를 지속한다는 것은 리스키한 일이기도 하지만, 시장이 반등되는 시점에 수혜를 극대화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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