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9년 차 박광규 SK에너지 P&M CIC 브랜드마케팅팀 PM(프로페셔널 매니저)은 퇴근을 서울 종로 술집으로 한다. 손님에게 불편한 점은 없는지, 더 필요한 건 없는지 살피느라 바쁘다. 술집 이름은 ‘SK주(酒)유소’. 작년 10월 1호점(서울 청계천)에 이어 올해 7월 2호점(울산), 이달 3호점을 열었다. 영업 기간은 한 달. 기름 대신 술을 판다. 주종은 맥주와 하이볼. 수익은 모두 기부한다. “SK가 하는 거 진짜 맞아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지난 20일 SK주(酒)유소에서 만난 박 PM은 “이곳에 오신 분들이 밝고 행복한 에너지를 받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SK 로고 행복날개 색상인 빨간색과 주황색으로 꾸민 이 공간을 SK주유소를 떠올리게 하는 볼거리들로 채웠다. 전기차, 휘발유 충전기 모형 주유구에선 맥주가 나오고 수소차 충전기 주유구에선 진저에일이 나온다. 점유율 넘버원 정유사 느낌을 살리기 위해 물류체계 핵심인 탱크로리 모형을 설치했고, 기름을 연상케 하는 드럼통 모양 좌석들을 테이블마다 깔았다.

SK주(酒)유소는 그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왜 정유사는 재미있는 마케팅을 하지 않을까?’ 신입 시절부터 생각했다. “주유소는 기름 넣으러 가는 귀찮은 공간이잖아요. 기름 넣는 경험을 재미있게, 소소한 행복으로 연결해보면 어떨까? 주유기에서 기름이 아니라 술이나 음료수가 나오면 재미있을 거 같았어요.”

7년간 주유소 영업관리부에서 근무하면서부터 그려왔던 아이디어를 지난해 브랜드마케팅팀으로 이동한 후 팀 회식 자리에서 처음 꺼냈다. “편한 분위기에서 한번 말씀드렸는데 팀장님이 재밌다고 만들어보자고 하셔서 바로 추진하게 됐어요.” 최고경영진에 박 PM이 직접 보고했고 즉시 승인받았다. SK에너지는 직급과 상관없이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경영진에 대면 보고하는 조직문화가 보편화돼 있다. 박 PM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로 SK주(酒)유소 1호점을 열 때까지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유업계에선 딱딱한 기름집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감성을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잠재고객인 2030세대가 타깃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23년 만에 주유소 디자인을 바꿨고 에쓰오일은 ‘구도일’이란 기름방울 캐릭터로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공간을 만든 곳은 SK에너지가 처음이다. 대기업에서 개인의 생각을 키워 곧장 사업화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꿈꿔왔던 작은 아이디어가 회사 차원의 지원으로 이렇게 구현이 되는 거잖아요. 제가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과정들이 매우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인생을 통틀어서 ‘언제 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제게는 인생 프로젝트 같은 느낌입니다.”

회사 응원을 받고 시작한 일이다 보니 ‘열심히 하기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심적 부담감에 SK주(酒)유소를 오픈할 때쯤이면 악몽에 시달렸다. “매장에 손님이 아무도 없는 악몽을 꾸면서 새벽 2~3시에 깼어요. 그대로 잠 못 자고 출근하고….”

주말까지 반납하며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지만 고생보다 보람이 더 크다. “몸은 피곤해도 손님들이 SK주유소에 대해 좋은 반응을 해주시는 데서 얻는 에너지로 살고 있어요. 고객이 SK주유소를 먼저 선택하고 SK에 대해 즐거운 마음으로 떠올리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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