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세상에 위대한 선수는 많다.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위대한 선수가 있는 반면,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개과천선한 선수도 있다.

오늘 이야기할 선수는 후자다. 21세의 어린 나이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강호 첼시로 이적한 미드필더가 있었다. 그는 첼시에서 밖으로 맴돌았다. 팀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20대의 어린 선수이기에 선배 선수들이 잘 타이르려 했지만, 그 선수는 오히려 더 어긋났다. 항상 화가 나 있었고, 항상 짜증을 냈고, 항상 삐쳐있었다. 훈련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프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승 경쟁을 하는 첼시에 어울리는 선수도 아니었다. 이에 참지 못한 선배가 지적하자, 그 선배와 싸우는 일도 발생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첼시 선수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고, 결국 그는 첼시의 ‘왕따’가 됐다. 스스로 선택한 현상이었다.  

당시 첼시의 감독은 천하의 조제 무리뉴였다. 무리뉴 감독이 이런 선수를 가만 둘리 없었다. 출전 기회는 거의 주지 않았다. 그는 임대를 전전해야 했다. 그리고 2014년 결국 첼시에서 쫓겨났다. 그가 향한 곳은 독일의 볼프스부르크였다.

놀라운 대반전. 볼프스부르크에서 그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비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후에는 폭발했다. 맨시티 최고의 미드필더, EPL 최고의 미드필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가 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케빈 더 브라위너다. 지금 모습을 보면 첼시 시절 그랬다는 것이 상상이 잘 안 된다. 그렇지만 현실이었다. 위대한 선수도 처음에는 위대하지 않을 수 있다. 더 브라위너는 그렇게 왕따를 극복하면서 위대한 선수로 등극했다.

더 브라위너의 숨기고 싶은 과거. 이 첼시 시절의 왕따를 폭로한 이는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첼시의 간판 미드필더로 활약한 존 오비 미첼이었다. 그는 이렇게 기억했다.

“첼시 시절 더 브라위너는 문제가 많은 선수였다. 지금이야 세계 최고의 선수지만, 첼시 시절 어린 더 브라위너는 프로정신이 부족했다. 브라위너는 훈련을 하러 온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항상 머리를 숙였고, 화가 났으며, 토라져 있었다. 첼시 선수들 모두가 더 브라위너와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사무엘 에투가 노력하지 않는 더 브라위너에게 지적을 했다. 그러자 더 브라위너가 반발하며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다.”

20대 문제아가 지금은 세계 최고의 선수로 탈바꿈했다. 미켈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더 브라위너의 경기를 보면, ‘정말 그때 그 선수와 같은 선수가 맞나?’라고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최용재의 매일밤 12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축구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잔잔한 칼럼입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가볍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자기 전 편안하게 시간 때울 수 있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매일밤 12시에 찾아갑니다.

[케빈 더 브라위너, 존 오비 미켈.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많이 본 뉴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