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촉진 방안 잇따라…소비자 체감 미미

업권 간 이견 조율 ‘난항’…덮어놓고 보류

5대銀 시장 지위 지배적…”변화 어려워”

서울 시내에 시중은행들의 자동화기기가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에 시중은행들의 자동화기기가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연초부터 추진한 은행권 체질개선 작업이 용두사미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은행권의 과점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나섰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사상 최대 이자이익을 올리고 서민들은 고금리에 시름하고 있다.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이 예대마진(예금·대출 금리 차이) 중심으로 견고하게 자리잡은 상황에서 이를 단기간에 바꾸긴 무리라는 지적과 더불어 금융업권 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 조율에도 실패했다는 평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 2월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 후속 조치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열고 개혁에 본격 착수했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윤 대통령의 은행권 저격성 발언으로부터 비롯됐다. 윤 대통령이 금리 상승기에 손쉽게 ‘이자장사’로 이익을 거두는 은행들을 지적하며 경쟁 유도 방안을 마련토록 주문하면서다.

◆ 경쟁 유도 효과 '글쎄'…소비자 체감 어려워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경쟁을 촉진해 금융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확대하는 방향에 주안점을 뒀다.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선 은행권 내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방안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소규모 특화은행·스몰라이센스와 은행 전환(저축은행→지방은행→시중은행) 등을 통해 경쟁자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규제 수준이 높은 은행업에 진입하려는 수요는 미미했다. 그나마 지방은행 DGB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체면치레를 하는가 했지만, 대구은행의 내부통제 허점이 드러나면서 인가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스몰라이센스와 특화은행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으로 유동성 리스크가 부각돼 수요가 있어도 허용해주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또한 금융당국은 은행과 비은행 간 경쟁 확대 계획도 내놨지만, 업권 간 이해관계 조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비은행권의 법인지급결제 허용 여부다. 하지만 비은행의 법인지급결제를 허용하면 결제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고, 은행권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관련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물론 소기의 성과도 있다.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를 확대·개편했고 온라인 예·적금 중개 서비스를 선보였다. 또 신용대출을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플랫폼도 구축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소비자가 체감할 수준의 금리 부담이 완화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국은 향후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낙관하고 있을 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과거부터 정부의 각종 지원책에 힘입어 수익을 냈었던 만큼, 이제는 경쟁을 통해 차주한테 혜택을 돌리길 바라고 있다”며 “하지만 이미 5대 은행이 견고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경쟁을 조장해도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정부도 경쟁 심화로 은행권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결국 어느 순간에는 정부가 개입해 경쟁을 막는 모순적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은행권 자체 경쟁력 강화 방안도 '반쪽짜리'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경쟁 유도뿐 아니라 자체 경쟁력도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공염불에 그치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은행의 자산관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투자일임업 허용안을 주요 안건으로 다룬 바 있다. 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을 확대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개선해주겠다는 구상이다.

투자일임업은 고객의 개별 계좌로부터 자산을 위임받아 대신 운용해주는 것을 말한다. 현재 증권사는 투자일임업이 전면 허용돼 종합자산관리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반면 은행은 투자일임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해당 안건도 잠정 보류되면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융권 또다른 관계자는 “투자일임업을 허용해주면 비이자이익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은행에 이를 허용해줘도 증권사와 고객군이 달라서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데, (일단 보류해 버린 것은) 아쉬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 반응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소속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 규제를 개선하는 내용의 감독규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에 해외 진출 금융사들의 자금 조달이 보다 쉬워졌다는 평가다.

◆ 5대銀 이자익 30조…사업구조 변화 어려워

정부가 헤매는 사이 은행권은 사상 최대 이자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3분기 누적 이자이익은 30조9366억원으로 1년 전보다 7.4% 늘면서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은행들의 이자이익은 갈수록 늘어나는 가운데 서민들의 금리 부담은 여전한 모습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중평균)는 연 4.90%로 전월 대비 0.07%포인트(p) 오르며 5%대를 바라보고 있다. 기업대출 금리도 연 5.27%로 0.06%p 상승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TF 성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은행권의 경쟁 촉진을 위해 TF가 운영됐다”며 “하지만 은행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막대한 당기순이익과 이자이익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은 과거 외환위기에 겪었던 트라우마가 있어 건전성 관리를 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행동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창의적인 상품을 개발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 해도 결국 대출이자를 받는 방식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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