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울산)=한영대 기자] 7일 울산 동구에 있는 HD현대일렉트릭의 500㎸(킬로볼트) 변압기 스마트공장. 1만8041㎡(약 5467평) 규모의 공장 초입에는 3대의 거대 로봇이 두께가 약 0.2㎜에 불과한 전기강판을 차례차례 쌓고 있었다. ‘철심자동적층설비’를 통해 변압기 뼈대 역할을 하는 철심을 제작하는 작업이다. 적층이 완료된 후 고정 과정을 거친 일부 구조물은 설비를 통해 수직으로 세워졌다.

철심 제작 공정을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현한 설비를 만든 회사는 HD현대일렉트릭이 유일하다. 설비 사용 이전에는 최대 6명의 작업자가 손으로 직접 2만장에 달하는 전기강판을 쌓았다. 현재는 1~2명의 검사인력만 공정에 투입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스마트공장에 설치된 철심자동적층설비. [HD현대일렉트릭 제공]

완성된 철심은 자동 이송장비 ‘에어쿠션’을 통해 권선(전압을 바꾸는 장치) 등이 설치되는 조립 공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백t이 넘는 변압기, 철심 무게를 고려해 에어쿠션은 최대 800t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양재철 HD현대일렉트릭 상무는 “과거 크레인으로 철심을 이동할 때 대기시간이 20분이 걸렸다”며 “(에어쿠션 덕분에) 크레인은 조립작업에만 사용하게 돼 작업능률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조립이 마무리된 제품은 테스트 과정을 거쳐 고객사에 인도된다.

HD현대일렉트릭 주력 제품인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가정, 공장 등에 송전하기 이전에 전압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 전력기기업체들은 변압기를 제작할 때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양산형 제품과 달리 발주처의 전력공사 현장에 맞춰 번번이 사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2020년 800억원을 투자해 500㎸ 변압기 스마트공장을 준공했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500㎸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가장 높아 500㎸ 변압기공장의 스마트화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7일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스마트공장에서 직원들이 키오스크를 통해 도면을 확인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제공]

변압기 스마트공장에는 자동화설비 외에도 다양한 첨단 기술이 도입됐다. 생산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 관리하는 ‘생산운영 시스템(MES)’, 설비 이상 여부를 공장관리자에게 즉시 전달하는 ‘설비모니터링시스템(FMS)’ 등이 대표적이다. 생산 현장 곳곳에는 변압기의 3D 도면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키오스크도 설치돼 있다.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공장 건설을 시작한 2018년 당시 HD현대일렉트릭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여파로 100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다음해인 2019년에도 영업손실 1567억원에 머물렀다. 악재 속에서도 HD현대일렉트릭은 훗날 전력기기 수요가 늘어날 상황을 대비해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7일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변압기 스마트공장에서 일부 변압기가 조립 단계를 거치고 있다. 조립이 완료된 후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제품들은 향후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HD현대일렉트릭 제공]

HD현대일렉트릭의 판단은 적중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프라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변압기 수요가 증가하자 스마트공장은 풀가동되고 있다. 스마트공장에는 30대가 넘는 변압기가 동시에 제작되고 있었다. 또 다른 3곳의 변압기공장(300㎸, 400㎸, 800㎸)을 모두 포함할 때는 무려 100여대에 달한다. HD현대일렉트릭은 변압기를 포함해 최대 4년치 납기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양 상무는 “과거 변압기를 제작할 때 최대 10개월이 걸렸다면 현재는 주문이 밀려 14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HD현대일렉트릭 변압기는 해외에서 상당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공장에서 완성된 제품 중 약 85%는 미국과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글로벌 고객사들은 대규모 정전 사태와 같은 위험 방지를 위해 제조사의 기술력은 물론 납품실적을 중시한다. 진입장벽이 높음에도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초고압 변압기(72.5㎸ 이상)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7일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스마트공장에서 ‘철심자동적층설비’가 작동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제공]

김영기 HD현대일렉트릭 부사장은 “미국에서 요구하는 대형 변압기 사양을 제작할 수 있는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며 “초고압 변압기 기준으로 최근 2년 정도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HD현대일렉트릭 제품이 우수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변압기 수주액 1조7877억원을 달성했다. 5년 전인 2018년 전체 변압기 수주액(4578억원)보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변압기를 포함한 전체 수주액은 3조5156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 수주액(3조4155억원)을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8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전력청과 822억원 규모의 고압차단기 및 리액터 공급계약을 했다고 공시했다. 김 부사장은 “이달에도 굵직한 프로젝트를 (여러 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주 릴레이에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 3분기 매출 6944억원, 영업이익 854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8%, 125.9% 올랐다. 영업이익률은 12.3%에 이른다. 2017년 HD현대일렉트릭이 독립 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분기 기준 영업이익률 10%를 돌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부사장은 “고가 제품 위주의 선별 수주를 진행하면서 많은 수주를 획득하고,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말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전력기기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한 고객사는 10년 뒤인 2033년까지 장기 공급계약을 제안하기도 했다”며 “이는 그때까지도 전력망 투자가 계속 이뤄진다고 고객사가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늘어날 수요에 대응해 일찌감치 추가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 공장의 경우 272억원을 투자해 철심 공정 통합을 진행하고 있다. 공정 효율화로 변압기 생산능력이 확대될 시 연간 매출 1400억원의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HD현대일렉트릭은 예상하고 있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는 새 보관창고 및 야적장을 신축할 예정이다. 투자비용은 180억원이다.

7일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울산사업장에서 김영기(오른쪽) HD현대일렉트릭 부사장과 이철헌 HD현대일렉트릭 전무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제공]

탈탄소 트렌드에 맞춰 해상풍력사업도 키우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12월 제너럴일렉트릭(GE)과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 GE와 협력하에 풍력터빈 핵심인 나셀, 발전기의 국내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시장 확대를 통해 내년에는 3조원 이상, 2030년에는 매출 5조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기준 매출 2조1045억원을 기록했다.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변압기 스마트공장 외부 모습. [HD현대일렉트릭 제공]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