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10% 남짓한 지역에 50%가 넘는 인구가 집중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선진국에서 찾을 수 없다. 수십년 동안 균형발전 정책에도 수도권 집중이 멈추지 않는 현 상황을 보면 지금과 같은 정책방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은행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

여당이 추진 중인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한국은행이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강도 높게 비판한 보고서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두루 화제가 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포 지역 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논란이 거세지만 국민의힘이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김포-서울 편입은 정치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상황이다. 정치권과 이해관계자들의 찬반 양론이 격돌하는 가운데 전날 대통령실에서는 “여러 각도로 협의중”이라는 취지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은의 보고서가 주목받는 이유는 수도권 집중화 폐해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그동안 모든 지역에 예산을 고루 배분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발전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소신있게 펼쳤기 때문이다. 각 정당과 지자체가 저마다의 정치적 이해득실과 지역 이익만을 따지는 형국이 반복되면서, 국가의 미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목소리는 실종됐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한은은 현실적인 방안으로 지방 거점도시를 육성하자는 대안을 내놨다.

지난 3일 발간된 한은의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도권은 약 12%의 국토에 50%가 넘는 인구가 몰려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수준의 집중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집중 현상은 최근 청년층의 활발한 인구인동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수도권으로의 청년층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비수도권 지역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출산감소로 인구감소가 더욱 가속화되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 20년간 청년층 유출에 따른 호남권의 2021년 출산손실은 출생아수의 49.7%나 됐고, 대경·동남권은 31.6%, 21.9% 수준이었다. 지역 경제는 청년이 떠나 출산이 줄고 고령화가 가속화하면 산업 성장과 일자리 다양성이 크게 제약됐고, 이는 다시 추가적인 인구유출 요인으로 작용하는 실정이다. 청년이 유입되는 수도권도 과도한 도시밀도로 인한 경쟁 격화가 결혼과 출산을 위축시키는 등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심화된 지역간 격차는 결국 국가경제의 안정과 성장 기반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한은은 우리나라 대도시들과 서울간 격차는 경제·문화·의료 등 대부분 분야에서 2015년 이후 더 확대되고 있는데 서울 일극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일반적으로 주변에서 인구를 끌어들여야 할 다른 대도시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하는 데 주목했다. 인구유출과 지역경제 악화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오랜 기간 추진해왔고, 낙후지역의 삶의 질 개선과 자생적 성장기반 확충에 기여했으나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되기만 해 정책적 노력이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도권 집중 정도는 주요 선진국 대비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서울의 부산 대비 인구비는 2.8배로 국토와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와 비교할 만한 주요 국가들(2배 내외)보다 수도-제2도시간 격차가 크다. 독일·일본 등 주요국의 경우 비수도권에서 거점도시로의 집중이 실제로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는 효과로 나타났지만 우리나라는 거점도시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 정민수 지역경제조사팀 차장은 “그동안 모든 지역에 예산을 고루 배분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발전전략을 거점도시 중심으로 전환해 정책효과와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권역별 거점도시들이 규모와 중심기능을 회복해 전체 권역의 산업경쟁력과 집적경제를 최대화하는 것이 일방적인 쏠림을 완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현재 정부는 제5차 국가균형발전계획(2023~2027년)을 수립 중이다. 한은은 모든 도시에 골고루 예산을 배분하는 기존 전략보다는 ‘될 것 같은 핵심 거점도시’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키우는 것이야말로 정책의 효과를 높이고 수도권 집중화를 막는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지난 20년 동안 16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수도권 집중만 심화된 만큼 과거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전면 반박에 나선 것이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같은 거점도시를 육성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줄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자는 제안이다. 다만 한은은 “이번 보고서는 여당의 김포 서울 편입에 따른 메가서울 논란과는 별개로 진행된 연구”라면서 “거점도시를 육성해 수도권 집중화의 폐해를 줄이자는 취지”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홍석철 상임위원은 “지방의 청년층을 수도권이 빨아들이면서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각 지역은 청년들 유치를 위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면서 “수도권 쏠림 현상은 저출산을 가속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핵심 거점도시를 키워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를 줄이자는 방안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출산율로 봤을 때 수도권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도시들의 출산율이 동시에 떨어지고 있는데 이는 일자리·주거·삶의 질이 복합적으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보다는 장기적으로 수도권 쏠림현상과 지방소멸 위기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해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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