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국회 통과…1년 365일 줄파업 벌이도록 판 깔아줘

기업 해외 이전 러시 우려…출퇴근 영영 못할 수도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이틀간의 경고 파업에 돌입한 9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이 퇴근길에 오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이틀간의 경고 파업에 돌입한 9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이 퇴근길에 오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어제(9일) 지하철 운행 지연으로 퇴근길 고생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탈 사람은 몰리는데 열차는 뜨문뜨문 오는 탓에 개찰구 밖 계단까지 줄이 이어지고, 최소 서너 대씩은 열차를 그냥 보내야 했죠. 겨우겨우 타는 데 성공했더라도 콩나물시루 같은 공간에 끼인 상태로 속도는 느릿느릿, 스트레스 지수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파업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3개 복수노조 중 한국노총과 MZ세대 조합원들로 구성된 올바른노조는 시민 불편을 우려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조합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주노총이 파업을 강행하면서 퇴근길 대란이 벌어졌습니다.

보통 이런 일은 일 년에 한 번씩 일어납니다. 모든 기업은 매년 노사 단체교섭을 벌이는데 그 와중에 의견 대립이 심해지면 노조가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발생을 신고하죠. 중노위는 나름 노사간 대립을 중재하려고 노력(쟁의조정)하는데, 노조가 애초에 파업을 목적으로 교섭을 결렬시킨 것이라면 중노위도 방법이 없습니다. 쟁의조정이 중단되면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쟁의권을 얻게 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떻게든 노사가 합의에 이르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교섭이 최종 타결되면 당분간은 파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일 년에 한 번씩 걸리는 계절감기 정도였죠.

‘지금까지는’이라는 전제를 깐 것은, 앞으로는 그렇지 않게 될 수도 있어서입니다. 퇴근길 대란이 일어난 날 공교롭게도 여의도에서 나랏밥을 드시는 분들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2‧3조 개정안)’이란 걸 통과시켰거든요.

이 법안은 노동쟁의 개념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근로조건의 결정 과정, 즉 노사간 교섭을 할 때 뿐 아니라 이미 타결된 교섭에 대해서도 그걸 해석하고 이행하는 부분에서 노조가 불만이 있다면 파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해석’이라는 단어가 참 애매해요. 이해관계자별로 생각이 다를 수 있거든요. 객관적으로 옳다 그르다가 명확한 게 아니라 한쪽에서 박박 우기면 분쟁이 발생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굳이 근로조건에 대해 불만이 없더라도 파업을 하고 싶으면 근로조건을 놓고 시비를 걸어 파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금까지는 일 년에 한 번씩 겪던 일을 앞으로는 일 년 내내 겪을 수 있다는 겁니다. 비단 지하철뿐이겠습니까. 제조업이나 유통, 서비스업 등 모든 분야에서 노조의 파업으로 불편을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일 년 내내 상존하게 됩니다.

노란봉투법에는 더 등골이 오싹한 내용도 담겨 있어요. 퇴근길이 불편한 정도를 떠나 어떤 분은 아예 출퇴근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답니다.

노란봉투법의 중요 개정 사항 중 하나는 원청회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은, 하청업체 근로자나 자영업자들까지 원청회사에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을 벌일 수도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이런 일을 강요당하면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을까요?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돈을 버는 게 기업의 존재 이유입니다. 한국에서 돈 버는 일이 골치 아파진다면 국내 하청업체와 거래를 끊고 골치 아픈 일을 강요하지 않는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겠죠. 외국계 기업들은 더 심할 겁니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하고 한국 내 사업을 철수하겠죠. 일자리는 줄어들고 출퇴근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이런 일을 왜 벌였냐고요? 표면적으로는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랍니다. 근로자 권익 보호, 물론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비록 선의를 바탕으로 만든 제도라고 해도 그걸 악용하는 자들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게 아닐까요.

어쨌든 야당(더불어민주당)은 머릿수를 앞세워 노란봉투법을 밀어 붙였고, 그걸 막겠다고 60명의 의원을 동원해 릴레이로 무제한 토론을 벌여 의사진행을 방해(필리버스터)하겠다던 여당(국민의힘)은 방통위원장 탄핵소추를 피하려 도망쳐 버렸다고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1년 365일 줄파업 난장판이 되지 않는 길은 단 하나 뿐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이의를 달아 국회로 되돌려 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헌법으로 보장받습니다. 이른바 ‘거부권’이죠. 어제 콩나물시루 1호선을 타고 퇴근하며 용산의 어떤 건물을 애처롭게 바라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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