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과정에서 모처럼 조성된 여야 사이 협치 분위기가 보름도 안 돼 실종되며 정국이 급랭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돼 이를 강행처리한 더불어민주당의 반발이 예상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1월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을 둘러싼 여야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막기 위해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까지 포기했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철회한 뒤 탄핵을 계속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의힘에서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어제 국회에서 야당은 여당과 충분한 협의 없이 우리의 경제와 국민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법안을 강행처리했다”며 “정부로서는 민생과 거리가 있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안건들이 충분한 숙의 없이 처리되는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과 관련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건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이번에 통과된 법안의 문제점과 부작용에 대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국익을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노사관계에서 사용자 범위를 원청 업체까지 넓히고 법에서 정한 노동 쟁의 행위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한편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는 일부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법이다.

이번에 통과된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의 핵심은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교육방송(EBS)의 이사회 구조와 이사 추천 권한, 사장 선출 방식 등을 변경해 방송 지배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를 놓고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노란봉투법은 파업 유도법이나 노조를 위한 법이 아니라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로) 삶의 벼랑 끝에 있는 분들에게 손을 내미는 인권 법안이며 방송3법은 언론의 자유를 위한 핵심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음에도 공포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네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9일 발표한 긴급 성명서에서 “이 법안이 가져올 산업 현장의 혼란과 경제적 파국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의 거부권밖에 없다”며 “우리 기업들이 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거부권을 행사해 주길 건의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아직까지는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다만 정부와 여당이 해당 법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온 것을 감안하면 정부 부처의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국민의힘의 공식적인 거부권 요청이 이뤄진 뒤 윤 대통령이 이를 행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께 거부권 행사를 건의 드려야 하는 무거운 심정”이라며 “쉽지 않은 정치적 결단인 만큼 많은 국민이 이 법안이 폐기돼야 하는 데 뜻을 같이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실제 이뤄지면 지지층과 정국 주도권을 의식한 민주당의 극렬한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1월10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쟁점 법안에 대한 거부권 문제뿐 아니라 이동관 위원장 탄핵 문제를 놓고도 여야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애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해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설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히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 보고하자 이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전격 철회하면서 법안 방어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의원실에 따르면 “필리버스터 때문에 다음 주까지는 따로 언론사 일정을 잡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에 진심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필리버스터를 하게 되면 본회의가 계속 열려있다는 점을 이용해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철회를 결정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탄핵소추안은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이내에 표결되지 않으면 폐기된 것으로 본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 24시간을 넘기게 된다면 탄핵안 표결도 이뤄질 수밖에 없었으나 필리버스터를 포기하면서 다음 본회의 개최 일정을 잡지 못해 제동이 걸렸다.

이에 민주당이 10일 이동관 위원장에 대한 탄핵철회서를 제출한 뒤 11월30일과 12월1일 연이어 잡혀 있는 본회의 등에서 탄핵안 추진을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철회가 불가능하며 탄핵 추진을 강행하면 법적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래저래 당분간 여야의 대립은 극한 대치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여야 원내대표가 지난달 신사협정을 맺은 지 보름도 안 돼 정국이 급랭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윤재옥 원내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는 10월24일 상대당을 비방하는 팻말을 소지하거나 회의 중에 고성을 지르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신사협정을 맺었다. 그뒤 지난 10월31일 윤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면담하는 등 협치 분위기가 조성됐으나 쟁점 법안과 방통위원장 탄핵 문제로 대립해 여야 모두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병묵 전 TV조선 해설위원은 9일 국회방송 국회라이브6에 나와 “대화와 타협은 손바닥이 마주쳐야지 소리가 나는 거 아니겠는가”라며 “노력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풀리는 그런 국면은 이미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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