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포드 튀르키예 합작공장 철회·SK온-포드 美켄터키 2공장 가동연기

완성차에 끌려가던 배터리, 속도조절 국면서 ‘여유 갖고 내실에 주력’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가 전기차 수요 성장세 둔화를 이유로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계획을 철회하는 등 전기차 관련 생산·투자 속도조절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고금리에 따른 소비 위축에 따른 전기차 시장 둔화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배터리업계도 상황을 주시하며 사업 확장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에 배터리 투자도 잇단 속도조절

12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포드와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하던 튀르키예 코치 그룹은 11일(현지시간)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3자 양해각서(MOU)를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이와 관련해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고려했을 때 튀르키예에 건설 예정이던 배터리셀 생산시설 투자를 지속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에 상호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전망에 따른 결정으로 해석된다.

포드와 코치는 튀르키예에 합작사 포드 오토산(Ford-Otosan)을 설립해 연간 45만대 규모로 상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이 참여하는 합작공장이 설립된다면 포드가 유럽 시장 중심으로 판매하는 전기 상용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유럽 전기차 시장 성장이 둔화한 가운데 당장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허겁지겁 신규 공장을 짓고 생산 인력을 확보하기란 부담스럽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의 기존 생산시설로도 단독으로 배터리 공급이 가능한 만큼 굳이 합작법인을 고수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

외신에 따르면 폭스바겐그룹도 유럽 전기차 수요 둔화 전망을 고려해 동유럽 지역에 4번째 배터리 생산공장을 지으려던 계획을 연기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밖에 포드는 지난달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애초 계획한 전기차 투자액 중 120억달러(약 16조2천600억원)를 축소한다고 발표하면서 SK온과 합작해 건설 예정인 미국 켄터키 2공장 가동 연기 방침도 밝혔다.

일각에서는 최근 SK온이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 증설 공사를 중단한 것을 두고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 둔화를 고려한 속도조절의 일환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SK온은 투자 비용 집행 과정에서 공사를 일시 중단했을 뿐 시장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달 6일부터 중단됐던 서산공장 증설 공사는 11일 재개됐다.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 “마라톤 42.195㎞에서 이제 4㎞”…숨고르는 K-배터리

다만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가 얼리 어답터(최첨단 제품을 먼저 구매해 쓰는 사람들) 시장에서 본격적인 대중화 단계로 이동하기까지 하나의 과정이며, 중장기적으로 전동화 전환이라는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인 만큼 배터리업계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도요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에 80억달러(약 10조8천억원)를 추가 투자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고, 현대자동차도 지난달 3분기 실적발표에서 전기차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중장기 생산·판매 전략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는 등 안정된 시그널을 내놨다.

오히려 이전까지는 완성차업계의 공격적인 전동화 전환 투자 속도와 규모에 배터리업계가 ‘끌려가는’ 형국이었다면, 지금은 완성차업계의 속도 조절이 이뤄지는 동안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 등 본질적 측면을 개선할 여유를 얻었다는 게 배터리업계 일각의 견해다.

실제로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급속한 전동화 전환에 발맞춘 국내 배터리업계의 사업 확장 속도는 꽤 숨 가쁜 수준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에만 생산공장 8개(단독 2개, 합작 6개)를 건설·운영 중이고, SK온도 북미에서 6개(단독 2개, 합작 4개)를 건설 또는 운영하는 등 물적 토대를 빠르게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배터리업계는 지금과 같은 단기적 전기차 시장 둔화가 오히려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차분하게 대응하겠다는 분위기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지난 1일 ‘2023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배터리 사업은 마라톤 42.195㎞에서 이제 4㎞ 정도 뛰었다”고 비유하며 “급히 성장하다 보니 간과한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다지다 보면 배터리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시각에서는 최근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연이어 직면한 전동화 전환 속도조절 사례가 역으로 득이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의 튀르키예 합작공장 계획 철회도 한편으로는 전기차 시장 둔화라는 어두운 면을 보여주지만,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서는 합작이 아닌 단독공장에서 포드에 배터리를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판매 수익을 100% 회수하고 유휴 라인까지 활용한다는 이점을 얻는다는 것이다.

포드와 합작한 켄터키 2공장 가동이 연기된 SK온도 2025∼2026년 4개 공장을 연이어 가동해야 한다는 부담을 진 상황에서 1개 공장 가동 일정이 미뤄진 것이 오히려 비용 조달과 원재료 수급, 인력 확보 등 측면에서 여유를 줬다는 게 업계 일각의 분석이다.

pulse@yna.co.kr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