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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180도 변한 글로벌 경영환경은 재계 총수들을 엄중한 리더십 시험대 위로 올려놨다. 국가 경제의 큰 축을 맡던 반도체가 공급과잉으로 천문학적 적자를 내기 시작했고 100년 내연기관자동차는 전기차에 바톤을 넘기려 하고 있다. AI가 전자·IT 업계의 판도를 뒤바꿨고 에너지 패러다임은 ‘무탄소’로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재계 총수들은 즉각 시야를 넓히고 발로 뛰어 흐름을 읽기 시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기술’과 ‘사람’을 외쳤고 최태원 SK 회장은 ‘서든 데스’를 거듭 언급하며 복합위기 대응에 나섰다. “IT 기업 보다 빨리 변해야 한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고객 감동’을 모토로 한 경영철학을 임팩트 있게 추진 중인 구광모 LG그룹 회장까지. ‘위기’의 또다른 이름 ‘기회’를 떠올리며 세상에 대한 비전과 가치, 철학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는 리더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시아투데이 최원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후 내내 전세계를 돌며 하반기 ‘업 턴’을 준비 해 온 그 결과물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중요한 건 불황에도 꺾이지 않았던 투자다. 성과는 차세대 반도체와 혁신적 AI(인공지능) ‘초격차’로 나타났다. 반도체 싸이클이 상승 궤도에 오르는 시점, ‘위기에 진짜 실력’ 나온다는 이 회장의 발언이 빛을 발할 시기가 왔다는 분석이다. 기술과 인재를 챙기며 5년 후, 10년 후를 강조 해 온 터라 향후 성적표에 더 관심이 쏠린다.

1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올해는 호암 이병철 창업회장이 첨단 반도체 산업 진출을 선언한 지 꼭 40년, 이건희 선대 회장이 그룹의 틀을 갈아 엎은 ‘신경영’ 선언을 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여기에 이재용 회장이 총수 자리에 올라 온전히 경영 1년을 채운 첫 해이기도 하다.

역대급 성과를 낸 해로 기억 돼도 부족할 판에, 삼성은 14년만에 반도체사업에서 적자를 경험했다. 그것도 3분기 누적 12조69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다. 분기별 무려 14조원을 넘나들던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은 올해 1, 2분기 연속 6000억원대로 바닥을 찍었다. 위기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시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해 한때 5만1800원까지 떨어졌던 삼성전자 주가는 현재 7만원을 넘어서며 추세적 상승 중이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에서 이같이 판단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업계는 단기적 이익과 손실만 보고 경영 성과를 판단하면 안된다는 선친의 경영철학에 주목하고 있다. 故 이건희 선대 회장은 생전 “전자 산업은 장부상 이익과 손실만 갖고 경영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판단해선 안된다. 남보다 빠르게 기회를 잡아 선점했느냐 못했느냐가 진정한 이익과 손실 개념”이라고 강조해 왔다.

반도체 불황이 시작되면서 이 회장은 전세계 리더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주요 비즈니스 국가 수뇌부터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를 줄줄이 면담하며 정세를 읽으려 애썼다. 핵심 사업장에서 현지 법인장들과 머리를 맞대어 전략을 짜느라 명절까지 반납했다. 지구를 세 바퀴는 돌았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팬데믹 이후 공급과잉 상태의 반도체 새 전략을 짜야 했고 미국이 한국과 일본, 대만을 옭아 맨 반도체 동맹, ‘반도체 지원법’에 대한 큰 구상이 이뤄져야 했던 시기다. 이 회장은 사내 메시지를 전하거나,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세상에 없는 기술’의 중요성을, 또 그 기술을 만드는 ‘인재’를 기반에 둔 경영철학을 설파했다.

성과는 어땠을까. 반도체 공급과잉이 D램 판매단가를 2021년 9월말 평균 4.1달러에서 2년만에 1.3달러까지 추락 시켰고 이 회장은 경영진과 치열한 토론 끝에 불황을 넘어 호황기 최대 실적을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자연적 감산’으로 소개한 생산라인 고도화 작업이다. 경기 회복 시그널이 커질 때에 맞춰 효율을 극대화 한 최신 설비가 가동할 수 있게 공사기간을 잡았다는 얘기다. ‘움츠려야 더 멀리 뛰는 개구리’를 떠올리면 쉽다. 그렇게 D램 단가가 1.5달러 수준으로 반등하며 정상화 신호탄이 쏘아진 게 지난달 말이다.

단순히 싸이클이 ‘업 턴’에 들어섰다고 그 시장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적이 바닥을 치고 있음에도 올해 삼성전자는 시설투자에 역대 최대인 53조7000억원을 차질 없이 집행 중이다. 지난 2분기 불과 668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R&D에만 10배가 넘는 7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위기에 진짜 실력 나온다’는 이 회장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 받는 건 이 와중에 꺼내놓은 기술적 성과의 영향이다. 차세대 PC·판도를 바꿀 혁신적 메모리 모듈 ‘LPCAMM’을 내놨고 업계 최초 GDDR7 D램도 발표했다. AI시대를 맞아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능력은 내년까지 2.5배 더 확대한다.

주목 할 혁신적인 도전은 애플 보다 먼저 화두로 던진 삼성의 AI 기술이다. 자체 개발 생성형 AI ‘가우스’를, 내년 초 출시 할 갤럭시 차기 모델에 탑재하기로 했다. 외국어로 통화할 때 자동으로 실시간 통역 통화하는 기능이다. 발표와 동시에 전세계에서 언어의 장벽을 해소 할 발판이 될 거란 기대가 쏟아졌다. 퍼스트 무버를 자처한 ‘폴더블’ 시장도 꾸준한 성장세다. 그렇게 쌓인 축적의 시간은 경쟁사 대비 안정성과 공급망에서 더 우위에 설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끊임 없이 방향을 제시하고 업계를 리딩하려는, 삼성의 혁신 의지가 꺾이지 않고 있다”며 “그동안 숱한 위기에도 살아남아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었던 저력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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