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혁신안, 인 위원장 성급했다

의원 정수와 세비 당연히 줄여야

타깃 선명하게 공략은 강력하게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김기현 대표 만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김기현 대표 만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스스로를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지난 10일 중앙당사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가 내놓은 안건과 권고사항을 지도부가 잘 수용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간이 좀 필요하다”면서도 마냥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을 이런 표현으로 내비쳤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1호 혁신안인 “(‘소속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를) 안 받으면 민주당은 망한다”고 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압박이다. 인 위원장이 2호 혁신안에서 제기한 ‘당지도부·중진·친윤의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요구에 대한 당 측의 수용 여부에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그 핵심에 있는 사람이 김기현 당 대표다. 그가 이 요구 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자신부터 실천하면 혁신위도 살고 당도 산다. 반대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처럼 자신이 살려고 대국민 약속을 꿀꺽 삼켜버리고, 혁신위 안을 깔아뭉갠다면 민주당 김 전 혁신위원장의 말처럼 당도 망하고 자신도 망한다.

김 대표는 측근에게 “국회의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큰 영광은 다 이뤘다”고 말한 것으로 언론들이 보도했다. 4선의원에 원내 대표, 당 대표까지 섭렵했으니 지금 그만둔다고 해도 미련 남을 게 없기는 하다. 그런 뜻에서 한 말이라면 그가 과감히 혁신위의 안을 앞장서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공식 반응은 여전히 유보적이다.

1호 혁신안, 인 위원장 성급했다

그는 9일 이 문제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해는 되지만 인 위원장처럼 국민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성질이 급하다. 너무 뜸을 들이면 실망하고 만다. 정치에는 특히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 점을 국민의힘 지도부와 유력자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인 위원장의 성질이 너무 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혁신안 1호를 ‘이준석·홍준표 사면’으로 정했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당시의 중앙윤리위원회가 아무생각 없이 꼭두각시 노릇만 했을 리는 없다. 혁신위가 윤리위의 징계를 둘러엎는 일부터 시작했고 그걸 당지도부가 바로 수용한 것은, 특히 외부인사로서 참여했던 위원장이나 위원들에겐 더할 수 없는 모욕이었을 것이다. 정당이 이렇게 신의가 없어서야!

화합차원에서 사면조치를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인 위원장의 ‘착한 성급함’이 이·홍 등 사면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조소·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의 여당’을 박차고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자면 제대로 한 방 먹일 계기가 필요했다. 징벌 받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나가는 장면이 소망스러웠던 거다. 홍 대구시장은 임기가 아직도 많이 남았다. ‘다음엔 대선’이라고 계산하고 있을 그에게 시혜로서의 징계 취소가 달가울 리 없었다.

이들의 이죽거림과 조롱을 들으면서도 인 위원장은 오히려 만남을 통해 (아마도)화해·화합·협력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이들을 찾아갔다. 부산으로, 대구로 뛰어 다녔지만 이 전 대표로부터는 영어 훈계를, 홍 시장에게서는 당에 대한, 교만이 넘치는 비난과 훈수를 들어야 했다. 인 위원장에게 대국을 보는 눈은 있으되 현실정치를 다루는 기술은 아무래도 모자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다른 혁신안들은 제대로 핵심을 찔렀다. ▲국회의원 숫자 10% 감축 ▲불체포특권 전면 포기, 당헌 당규 명문화 ▲국회의원 세비 삭감, 구속 시 전면 박탈(이상 2호 혁신안) ▲ 당지도부 중진 친윤의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현역의원 평가 후 하위 20% 공천 원천 배제는 지난 칼럼에서 다룸)은 대의민주정치의 성숙을 위한 대단히 긴요한 과제다. 3호 혁신안으로 ▲비례대표 명부의 당선권에 청년(만 45세 미만) 50% 할당 의무화 ▲당선 우세지역을 ‘청년 전략지역구’로 선정, 공개 오디션 등의 방법으로 선발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획기적 전략이라고 할 만하다.

의원 정수와 세비 당연히 줄여야

국회의 입법이나 의결이 필요한 것은 국민의힘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가 없지만 당의 총선 공약으로 채택할 수는 있다. 거대 정당 소속 의원들의 자율권이 사실상 제한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회의원의 수는 별 의미가 없다. 많으면 국민의 비용부담이 늘고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반면에 정당 지배세력의 입장에서는 휘하의 거수기擧手機가 늘어나는 만큼 유무형의 권력이나 이익도 커진다).


불체포 특권의 전면 포기를 당헌 당규에 명문화하라는 요구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소속 의원들이 집단으로 서명까지 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당 차원에서라도 법제화하라는 요구라고 하겠다. 당헌 당규에 이를 명시하고 총선 공약으로 내건다면 다른 정당도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불체포 특권은 통치세력의 권력이 입법부를 압도하던 시대에 이를 견제할 최소한의 법적 장치로서 마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입법부와, 이를 지배하는 다수당의 힘이 행정부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불법행위 범죄행위를 저지른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장치로 악용되고 있는 이 제도는 폐지되는 게 순리다. 아울러 면책특권에 있어서도, 입법 활동과 상관없는 비난 마타도어 모함 선동 모욕 등은 비난 대상에서 제외해야 옳다. 면책특권 뒤에 숨어 온갖 허위사실을 태연히 주장하고, 이것을 법이 보호하는 것은 대의민주정을 타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대정부 질문을 한다면서 소리를 질러대고 모욕을 주고 훈계를 하는 행위도 당연히 금지 목록에 올려져야 한다.

의원 1인당 세비는 연 1억5426만3460원이다. 보좌진의 경우 4급 2명 1억7518만9440원, 5급 2명 1억5769만8160원, 6,7,8,9급 각 1명 총1억8163만4800원, 인턴 1명 2769만3960원인데 모두 합하면 5억4221만6360원에 이른다. 의원 1인 밑에 들어가는 인건비가 6억9647만9820원인 셈이다. 여기에 사무실 운영지원, 공무출장 등 교통지원, 입법 및 정책개발 지원, 의원실 보좌직원 지원 비용이 추가된다.

한국 의원들의 세비 수준이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나온 게 아니다. 게다가 보좌진 수는 보좌관 제도가 아주 다른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상징적인 예로서 자주 인용되지만, 스웨덴 의원들은 개인 보좌관을 둘 수 없다. 입법 지원이 필요할 경우 당에 요청, 소속 보좌관 도움을 받는데 보통 정책 보좌관 1명이 의원 5~6명을 돕는다(월간 조선, 23년 11월호). 일본의 경우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보좌진은 3명에 불과하다.

타깃 선명하게 공략은 강력하게

국회의원이 직접 일할 수 있게 환경을 바꿔줘야 하는 것 아닌가? 고급 지원인력이 이렇게 많은데 의원이 입법이든 예산심의든 국정감사든 직접 챙기고 고민해야 할 까닭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당 지도부, 유력자들 주변을 맴돌면서 공격수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당선무효형 선고를 받은 경우에도 이미 받은 세비를 반납할 필요가 없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기소되어 재임 중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격 없이 국회의원 노릇을 한 것도 문제인데 받은 세비까지 자기 것으로 챙기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제도인가? 구속되면 세비 지급을 중단하고 후에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이자를 붙여 지급하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청년 중시·우대 방안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모든 면에서 변화의 과속이 걱정스럽다는 우리사회에서 유독 정치분야만 기성세대가 거의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는 현상은 기이하다고 할만하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고 우겨댈 일이 아니라 우리부터 바뀌도록 노력할 일이다. 그 점에서 혁신위의 시도는 소중하다고 하겠다. 다만 거대정당 지도부에게 국회의원 임명의 특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은 현행의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 유감스럽다.

‘성질 급한’ 인 위원장은 혁신의 고삐를 계속 죄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고 들린다. 박수를 보낼 일이지만 걱정도 없지 않다.

“우유 그냥 마실래, 아니면 매 맞고 마실래. 말 안 듣는 사람에겐 거침없이 하겠다. 의사보고 환자를 데려와서 치료하라고 해서 환자 고치는 약을 처방했다. 분명한 건 변하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다. 다만 이번 주는 수능이 치러지는 만큼 조용히 있으려고 한다. 다음 주는 기대해도 좋다. (중진 압박 관련) 별소리를 다 할지 모른다.”

인 위원장이 12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단호한 것은 좋다. 그러나 과잉 의욕, 과잉 압박은 위험하다. 광범한 저항에 부딪혀 혁신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한 혁신’은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타깃을 한정적으로 설정해서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게 효과적이다. 백화점식 혁신 전략은 실패를 예약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혁신안이 늘어날수록 국민의 관심은 시들해지고 저항의 정도는 커진다.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되면 혁신위와 국민의힘은 공멸할 수도 있다.

“타깃은 선명하게, 공략은 강력하게, 수용은 과감하게!”

인 위원장과 당이 함께 성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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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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