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KBS2 ‘개그콘서트’

3년 4개월의 공백을 지우고 ‘개그콘서트’가 부활했다. 어쩌면 시대와 취향이 가장 빠르고,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개그 문화인 만큼 이미 한 차례 폐지로 장례식을 치렀던 프로그램의 부활은 시작 전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난 12일 방송된 KBS2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코리아 기준 수도권 4.8%, 전국 4.7%를 기록하고, 최고 시청률은 7%까지 치솟으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다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개그맨들이 모여 앉아 개그콘서트 폐지의 원인을 찾았을 때 말했던 ‘시대가 바뀌어 개그 소재에 제약이 생기고 움츠러든다’는 이유 때문일까. 웃음으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부 시청자는 웃음을 잃은 것뿐만 아니라 분노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부 코너에서 사용한 말과 행동을 지적하거나, 어떤 포인트에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가장 큰 문제가 된 건 인종 차별 논란이다. ‘니퉁의 인간극장’ 코너에서는 한국에서 결혼한 외국인 며느리 니퉁 역할을 맡은 김지영이 현실감 넘치는 연기를 펼쳐 주목받았다. 한국인 남편 역할의 박형민은 무뚝뚝해도 다정한 남편상을 보여주며 니퉁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때 시어머니 역할을 맡은 김영희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남편은 어머니가 오는 소리에 곧바로 껴안고 있던 니퉁을 내쳤다. 김영희는 등장한 순간부터 “니퉁 어딨어?”라며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는 “니퉁인지 네X인지, 내가 멸치 대가리 따라고 했더니 여기서 노가리를 까고 있어?”, “눈을 멸치 눈깔처럼 뜨고 대드는 것 좀 봐라”라며 막말했다.

결혼기념일이니 봐달라는 아들의 말에는 “결혼기념일이 대수야? 우리 아들 돈 빨아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라며 니퉁을 나무랐다.

급기야 된장찌개를 끓였다는 니퉁에게는 “너 된장찌개에 뭐 넣었어? 내가 스리라차 소스 처넣지 말라고 했지? 몇 병을 넣어서 애호박을 먹어도, 두부를 먹어도 스리라차 맛이 나”라고 호통쳤다.

니퉁은 시어머니의 구박에 굴하지 않고 하늘에 손을 모으며 “여기 아직 미각 살아있는 할머니 올려보내도 괜찮습니까?”라고 받아치긴 했으나, 일부 시청자는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 동남아에서 왔다는 이유로 스리라차 소스를 넣는다는 발언 등은 다소 차별적이라고 봤다.

특히 ‘스리라차 소스’ 발언은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 해외에서 한국인 며느리에게 아무 음식에나 된장이나 김치 등을 많이 넣는다고 매도할 때 차별적 발언으로 보지 않을 수 있냐는 지적이다.

한 시청자는 “차별과 희화가 넘나드는 것이 여전히 개그 소재로 쓰이네. 차라리 저렇게 못되게 구는 시어머니를 재치 있게 혼내주고 다문화 가정을 차별하지 말자는 풍자 개그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다문화가정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청소년이 12만 명이다. 이런 소재 자체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해당 코너에 대해 ‘개콘 신작 코너 중 가장 답 없는 코너’라고 소개한 글이 공감을 얻었다. 네티즌은 “사회적 약자만 골라서 비하한다”, “한국인인데 베트남 말투 흉내 내도 되는 건가?”, “발전이 없다”, “언제 적 개그냐”, “창피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밖에도 유부남 개그맨들은 아내 디스 개그로 선을 넘나들었다.

‘대한 결혼 만세’ 코너에서는 과거 ‘개그콘서트’에서 황해 코너로 인기를 끌었던 정찬민이 출연해 결혼을 독려했다. 그는 “와이프와 출연한 방송이 5개”라며 “결혼하면 정말 좋다. 나만의 내조의 여왕이 생긴다. 백화점에서 옷이 해졌다고 옷, 신발, 넥타이를 사주더라”라고 운을 떼더니, “근데 그거 내 돈이다. 왜 내 돈으로 생색을 내냐? 내조의 여왕이 아니라 내 돈의 여왕이다”라고 호통을 쳐 웃음을 유발했다.

‘형이야’ 코너에서는 개그맨 정태호가 아내와 후배의 부모님 외모를 디스한 후 큰절로 사과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고 싶어서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다고 꿈꾸는 고등학생 역할에게 정태호는 “옛말에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더니 “형 결혼한 거 알지? 형 와이프 봤지? 형은 겁쟁이야”라고 말해 웃음을 끌어냈다.

이번에는 관객석에 앉은 중년의 부부에게 다가가 “아내 분이시고, 남편분이시죠?”라더니 “겁쟁이랍니다”라고 버즈의 ‘겁쟁이’를 불렀다. 부부도, 관객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알고 보니 이들은 고등학생 역할을 맡은 개그맨 장현욱의 부모였다. 정태호는 또 한 번 “아버지 겁쟁이랍니다”라고 노래를 부르고, 추후 이들을 향해 큰절로 사죄해 웃음을 자아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금쪽이 유치원’ 코너에서는 수상하게 몸집이 큰 어린이 역할을 맡은 개그맨이 “기쁨이 귀해, 기쁨이 소중해”의 긍정적 표현으로 유행어 조짐을 보였다. ‘진상 조련사’에서는 “세상에 나쁜 진상은 없어요. 이런 개진상도 바뀔 수 있어요”라며 개 훈련사 강형욱을 흉내 내는 개그맨이 진상 손님을 길들였고, 관객석에선 공감의 웃음이 터졌다.

최근 동영상 플랫폼이나 SNS 등의 영향으로 숏폼에 익숙해진 시청자를 겨냥한 ‘숏폼플레이’ 코너도 눈길을 끌었다. 해당 코너에서는 실제로 숏폼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상황들을 연출해 웃음을 자아냈다.

앞서 개그콘서트는 지난 2020년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마지막을 기념해 그동안 개그콘서트에서 획을 그었던 개그맨들이 총출동해 눈물의 ‘개콘 장례식’으로 이별을 고했다. 이들은 영정사진 프레임에 개그콘서트 로고를 끼워놓고 각자 자신의 유행어나 큰 인기를 끌었던 장면을 소환해 추억에 젖었다.

‘개그콘서트’ 폐지 후 2021년 방송한 KBS 개그 서바이벌 프로그램 ‘개승자’에서는 박준형, 김준호, 김대희, 이수근 등 굵직한 대표 코미디언들이 모여 개그콘서트 폐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수근은 “시대가 변화됐기 때문”, 윤형빈은 “그저 재미가 없어서”, 김원효와 김준호는 “엄격한 심의 규정”, 이승윤은 “코미디의 위기는 자연의 이치”, 변기수는 “일차적인 개그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차적인 개그로 넘어갈 수가 없다” 등으로 의견을 모았다.

장례식까지 치른 마당에 부활이 아직은 시기상조였던 것일까? 혹은 박수칠 때 떠나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1999년부터 오랜 시간 사랑받았던 대표 개그 장수 프로그램인 만큼 애정이 있기에 쓴소리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그콘서트가 2020년 찍은 건 마침표가 아닌 쉼표였다. 다만, 유튜브나 OTT 프로그램에서 시대의 흐름을 따르거나, 주도하는 개그가 인기를 끌고 주목받는 시대인 만큼 세월이 만든 명성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순히 신구 세대가 연합한다는 의미를 뛰어넘는 돌파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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