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문구는? ⓒ연합뉴스/한겨레
올해의 문구는? ⓒ연합뉴스/한겨레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지. 양광모 시인의 '가장 넓은 길'의 한 구절. ⓒ연합뉴스/한겨레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지. 양광모 시인의 ‘가장 넓은 길’의 한 구절. ⓒ연합뉴스/한겨레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16일 치러진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답안지에 실린 필적 확인 문구다. 양광모 시인의 시 ‘가장 넓은 길’ 중 한 구절이다. 수험생들은 이 문구를 매 과목 답안지에 컴퓨터 사인펜을 이용해 정자로 직접 따라 적어 넣어야 한다.

양광모 시인의 ‘가장 넓은 길’
살다 보면/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눈에 덮였다고/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눈을 치우다 보면
새벽과 함께/길이 나타날 것이다.
가장 넓은 길은/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2018학년도 수능, 김영랑 ‘바다로 가자’. ⓒ유튜브 채널 ‘크랩’ 갈무리/한겨레
2018학년도 수능, 김영랑 ‘바다로 가자’. ⓒ유튜브 채널 ‘크랩’ 갈무리/한겨레

필적 확인 문구는 지난 2004년 실시된 2005학년도 수능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하자 대리시험을 막기 위해 이듬해 도입됐다. 수능뿐 아니라 수능 모의고사 등의 답안지에도 필적 확인 문구를 써넣어야 한다. 보통 국내 작가의 문학작품 가운데 적절한 문구를 문제 출제위원들이 골라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고 한다. ​

저마다 다른 필적을 가려내기 위한 용도인 만큼 까다로운 기준도 존재한다. 문장 길이는 12∼19자 사이여야 하며, ‘ㄻ’ ‘ㄾ’ ‘ㅀ’ 등 겹받침과 ‘ㄹ’ ‘ㅁ’ ‘ㅂ’ 세 자음 중 2개 이상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수험생 정서에 미칠 영향도 고려한다. 인적 사항 등을 제외하면 수험생들이 답안지를 받아들고 가장 먼저 기재하게 되는 문구인 만큼 수험생을 응원하는 메시지이거나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적 확인 문구가 도입된 첫 시험인 2005년 6월 수능 모의고사에는 윤동주의 ‘서시’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문구가 필적 확인 문구로 선정됐다. 직전 수능에서 발생한 대규모 부정행위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채택된 것이다.

2023학년도(맨 위)부터 2014학년도(맨 아래)까지 수능 시험 필적 확인 문구. ⓒ소셜네트워크 갈무리/한겨레
2023학년도(맨 위)부터 2014학년도(맨 아래)까지 수능 시험 필적 확인 문구. ⓒ소셜네트워크 갈무리/한겨레

지금껏 필적 확인 문구에 가장 많은 작품이 인용된 작가는 시인 정지용이다. 그의 작품 ‘향수’에서 지금까지 3차례나 필적 확인 문구가 인용됐다.

역대 필적 확인 문구는 아래와 같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2024학년도 수능, 양광모 ‘가장 넓은 길’)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2023학년도 수능, 한용운 ‘나의 꿈’)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2022학년도 수능, 이해인 ‘작은 노래2’)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2021학년도 수능, 나태주 ‘들 길을 걸으며’)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2020학년도 수능, 박두진 ‘별밭에 누워’)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2019학년도 수능, 김남조 ‘편지’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2018학년도 수능, 김영랑 ‘바다로 가자’)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2017학년도 수능, 정지용 ‘향수’)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2016학년도 수능, 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2015학년도 수능, 문태주 ‘돌의 배’)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2014학년도 수능, 박정만 ‘작은 연가’)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2013학년도 수능, 정한모 ‘가을에’)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2012학년도 수능, 황동규 ‘즐거운 편지’)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2011학년도 수능, 정채봉 ‘첫 마음’)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2010학년도 수능,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2009학년도 수능, 윤동주 ‘별 헤는 밤’)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2008학년도 수능, 윤동주 ‘소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2007학년도 수능, 정지용 ‘향수’)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 (2006학년도 수능, 정지용 ‘향수’)

한겨레 남지현 기자 /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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