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인도에서 열린 IOC총회때의 바트볼드 위원./바트볼드  위원 소셜미디어

프랑스 파리에서 몽골인 부부가 날치기를 당했다. 언뜻 국제 관광도시에서의 흔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얘깃거리가 얽혀있다.

바투시그 바트볼드 부부는 지난 달 11일 프랑스 드골 공항에서 호텔로 가던 중이었다. 늘 심하게 막히는 터널 부근. 자동차가 서서히 움직이는 틈을 타 오토바이를 탄 2명이 뒷 창문을 깨고 가방을 날치기해 달아났다.

■ 가난한 나라의 금수저 IOC 위원

이 사건으로 올림픽마다 따라붙는 해묵은 의문이 되살아났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은 과연 안전할 것인가?.” 파리가 범죄와 시위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찮게도 바트볼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파리 올림픽 안전과 관련한 IOC 회의에 참석하러 온 길이었다. 범인들이 그가 IOC의 안전 고위 인물인지 알고 노렸을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파리의 허술한 올림픽 치안을 조롱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더 관심을 모은 것은 부부의 피해 액수. 무려 60만유로(약 8억5000만 원) 값어치의 보석을 털렸다. 그 안에는 16만5000유로(약 2억3000만 원)짜리 다이아몬드 귀걸이도 있었다.

유럽 언론은 “몽골은 가난한 나라지만 부부는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비싼 보석들을 여행 중에 가지고 다니는 대가를 치룬 것”이라고 냉소했다. 나아가 올림픽 개최권이나 각종 계약 등을 둘러싼 IOC 위원들의 고질병인 뇌물 받기를 의심하기도 했다.

바트볼드의 배경과 이력을 보면 나라의 가난과 개인의 사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는 이제 37세. 허나 오래 전부터 재벌 총수며 국제 체육계의 거물이다. 전 총리의 아들로 중·고교부터 미국에서 다닌 조기유학파.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영국 런던의 금융권에서 일 한 뒤 아버지의 통신회사, 증권회사 등을 물려받는 회장이다.

몽골에서 이마트 개장식때의 바트볼드 회장./바트볼드 위원 소셜미디어

그는 고교 때는 농구선수였으나 2015년 29세 때 몽골 배드민턴협회 회장이 되었다. 31세에 세계배드민턴연맹 이사와 몽골 국가올림픽위원회 수석 부위원장. 32세에 IOC 마케팅 위원회 위원에 이어 34세 IOC위원. 36세인 22년에 몽골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눈부신 경력을 쌓으면서도 내 나라 사정에는 깜깜한 모양이다. 몽골의 1인 당 국민소득은 4000달러 가량. 대한민국의 경제 원조를 받는 가난한 나라에서 바트볼드의 씀씀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로부터 약 한달후인 11월2일. 파리 경찰은 날치기 용의자 3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하면서 사건은 물론 바트볼드의 신원이 처음 밝혀졌다. 이들은 바트볼드 부부를 상대로 범행하기 며칠 전 사우디아라비아 관광객들로부터 50만 유로 어치의 금품을 날치기 했다. 경찰은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 이들을 체포했다.

바트볼드 부부가 몽골로 돌아가 범죄가 공개된 이후 국민들 반응을 어쨌을까? 언론이 통제되어 대부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 ‘범죄의 온상’에서의 올림픽

잇단 날치기 사건은 파리에서 놀랄 일이 아니다. 파리는 ‘범죄의 온상’이라 불린다. 경찰은 에펠 탑 주위에서 협잡꾼과 소매치기들이 우글대고 노점상들에 의한 폭행 사고가 잇따라 일어나자 지난해 12월 올림픽 안전을 위한 강력한 단속을 발표했다. 1년 가까이 범죄 소탕 작전을 펼치고 있으나 별 소용이 없다. 1년 동안 파리에서 차량으로부터 금품 탈취 범죄는 30%, 절도는 14% 각각 늘었다. 바트볼드 부부 사건은 올림픽 치안 문제에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범죄뿐 아니다. 파리는 물론 프랑스 전역에서 난민 등에 의한 각종 시위는 국가 위기를 몰고 올 정도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후 유대인들에 대한 폭행이 잇따르고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파리 도심에서 18만 명이 반유대인 시위를 벌였다. 전쟁 여파가 올림픽까지 밀어닥칠 가능성도 있다.

올림픽은 스포츠 정신의 승리를 상징한다. 세계 평화와 화합을 위한 아름다운 방법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상은 아름다우나 올림픽의 현실은 범죄와 부패, 심지어 학살로 얼룩져 왔다. 사람들은 자랑스러운 메달을 칭찬하기에 바빠 어두운 뒷면을 지나치기 일쑤다. 선수들의 강건한 신체 매력과 치열한 경쟁의식, 애국심에 빠져 올림픽의 추악함을 잘 보지 못한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은 선수촌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의 코치와 선수를 살해했다. 올림픽 사상 최악의 비극이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은 8만5000명의 경찰·군인이 동원이 될 정도로 도시 치안이 엉망이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 올림픽은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IOC 위원들이 현금 등 뇌물을 받아 수사를 받았다. 결국 위원 6명이 쫓겨나고 여러 명이 스스로 물러났다. 브라질 올림픽 위원장은 리우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IOC 위원들에게 200만 달러의 뇌물을 준 등의 혐의로 30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도쿄 올림픽 역시 IOC 위원들에 대한 뇌물로 말썽을 빚었다. 지난 6월 프랑스 경찰은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 본부를 수색했다. 계약 관련 비리 때문이었다.

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등은 스포츠를 악용하는 검은 거래의 철옹성이다.

바트볼드 날치기 사건은 ‘위험한 파리’ 때문에 빚어졌다. 하지만 올림픽 안전과 IOC 부패 때문에 크게 불거졌다. 금수저 부부 탓에 ‘가난한 나라’라는 몽골 국민들만 속상하고 자존심 구기게 되었다.

◆손태규 교수는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특히 미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매주 마이데일리를 통해 해박한 지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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