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로 2% 성장 노리는 日…구조개혁 없인 '양날의 칼' 될수도

엔화의 끝 모를 추락은 일본 경제구조가 그만큼 허약함을 의미한다. 올해 일본 경제성장률이 2.0%(국제통화기금 전망치)로 한국 경제(1.4%)를 추월할 만큼 살아나고 있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무제한 돈 풀기에 따른 과도한 국채 잔액, 지지부진한 산업구조 개혁 등의 고질적 문제는 여전함을 외환시장이 시사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엔저의 달콤한 효과를 맛본 일본 정부가 당분간 엔저 국면을 더 끌고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다만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채무 탓에 금리를 쉽사리 올리기 힘든 일본이 구조 개혁 없이 엔저에 기댄 성장만 고집할 경우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1위…두려운 돈줄 죄기

엔화 가치의 바닥 모를 추락은 일본중앙은행(BOJ)의 독자 행보에 기인한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인플레이션 국면 속에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며 돈줄을 죄어왔다. 반면 일본은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기 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는 청개구리 통화정책을 펴왔다. 때마침 미국발 긴축 장기화에 따른 달러 강세와 맞물리며 엔화 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셈이다. 근 16년 만에 100원당 870원대까지 추락한 원·엔 환율도 이런 큰 흐름 속에 있다.

사실 일본 정부가 쉽사리 금리를 올릴 수 없는 복잡한 속내가 있다. 일본의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263%(202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다. 매년 갚아야 할 국채 이자만 9조 5000억 엔(약 85조 원)이 넘는다. 국채 대부분이 전 세계에 분포된 미국과 달리 일본 정부의 빚은 일본은행과 시중은행·연기금·가계 등 자국민이 갖고 있다. 섣불리 금리를 올렸다가는 이자 폭탄으로 되돌아와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구조다.

미중 갈등 따른 반사이익에 경제는 ‘꿈틀’

엔저를 둘러싼 논란에도 일본 경제는 단기적으로는 엔저 수혜를 누리고 있다. 역대급 엔저에 힘입어 일본의 올 2분기 GDP 성장율은 전 분기 대비 4.8%를 기록했다. 2분기 수출 역시 같은 기간 3.1% 증가했다. 올 상반기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1071만 명)은 4년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엔화 약세가 수출은 물론 관광 산업 부흥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엔저로 여행 수지가 개선되고 수출 경쟁력이 되살아나면서 GDP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일본은 중국에서 빠져나가는 자금과 미국 마이크론, 대만 TSMC 등 첨단 반도체 기업들을 끌어모으며 탈중국 자금의 유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리고 있다.

실제 일본은행은 올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3%에서 2.0%로 석 달 만에 0.7%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일본 성장률 전망치를 1.4%에서 2.0%로 올려잡았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율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올해 한일 양국의 성장률 역전 배경에는 엔저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엔저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통화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인구 감소, 혁신 부재 등 일본의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경제성장도 일시적”이라고 짚었다.

韓도 촉각…엔화 1%P 절하시 수출 물량 0.2%P 감소

슈퍼 엔저는 우리 경제에도 새 변수가 될 수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조사팀장은 “우리 기업의 해외 현지 생산·판매 비중이 늘면서 환율 영향은 이전 대비 크게 줄었다”며 “더욱이 달러 대비 원화와 엔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어 상대적인 불이익이 제한되는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엔저 장기화는 국내 수출 업계의 불안 요인이다. 한국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 상승률이 1%포인트(엔화 1%포인트 절하) 상승하면 한국의 수출 가격은 0.41%포인트 하락하고 수출 물량은 0.20%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팀장은 “경합도가 높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엔저로 일본을 찾는 내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날수록 여행 수지 적자 폭이 커질 경우 경상수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행 조치로 엔화 강세 전환 시점이 내년으로 늦춰진 것으로 보인다”며 “엔·달러는 연말까지 147~152엔 사이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재무관(차관)은 “엔화는 조만간 강세로 돌아서 내년 여름쯤 달러당 130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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