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안 심의 본격 시작

경제 상황에 4월 총선까지 겹치며

여야 막론하고 증액 분위기

정부 ‘건전재정’ 기조 흔들릴 수도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대폭 증액 작업에 나섰다. 건전재정 기조로 ‘짠물’ 예산안을 제출한 정부 입장이 곤란하게 된 것은 물론 자칫 내년도 정책 방향의 전폭적인 수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지난 13일부터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열어 657조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세부 심의를 시작했다.

예결위 예산소위는 국회 예산안 세부 심의를 통해 사업별 예산의 증·감액을 결정한다. 예결소위 인원은 더불어민주당 9명, 국민의힘 6명 등 15명이다. 예결특위 위원장인 민주당 서삼석 의원이 소위 위원장을 맡았다.

서삼석 위원장은 예산안 심의에 앞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부 예산안은) 필요필급은 없고 불요불급이 있는 모습”이라고 혹평했다. 써야 할 곳에 돈을 쓰지 않고 불필요한 곳에 예산을 배정했다는 뜻이다.

서 위원장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전년대비 대폭 삭감한 연구개발(R&D)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더불어 “지금 우리 경제는 저성장, 고물가, 고환율과 가계부채 등으로 인해 민간 소비와 투자가 모두 위축되고 있으므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재정 총량 확대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안 심사에서 대폭적인 조정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 지난 14일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는 민주당은 정부 예산안보다 8000억원 늘어난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첨단 바이오 글로벌 역량 강화 항목 등 1조1600억원을 감액하고 이를 R&D 예산으로 재편해 과학기술계 연구원 운영비와 4대 과학기술원 학생 인건비 항목 등은 2조원 증액했다.

방송통신심의위 예산안은 KBS 대외방송 송출과 EBS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하는 예산 등은 278억원 늘렸고, ‘가짜뉴스’ 규제 관련 예산은 46억원 줄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예산은 4개 사업에서 90억원가량 증액했다. 반면 중소형원자로 안전규제 기반 R&D 예산은 43억원 삭감했다.

문제는 국회에서 예산을 대폭 증액할 경우 취임 초부터 강조해 온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부는 지난해 출범 직후부터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경영개혁 작업을 펼칠 만큼 재정건전성을 신경 써 왔다. 각종 정책도 건전재정 기조 아래 계획을 세운 상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안 전체 증액에 대해 “정부가 예산을 냈기 때문에 총량을 늘리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추 부총리는 국회 과방위 예결소위에서 R&D 예산 등을 증액하던 날 기자들에게 “국회에서 비효율적인 사업에 대해 일부 감액이 있으면 감액 범위 내에서 필요한 범위를 증액하는 것이지, 전체 총지출을 늘려 국회에서 마무리되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갖고 심사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예산안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예산안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총선 앞둔 국회, 여야 가릴 것 없이 ‘퍼주기’ 가능성

물가 현장을 살피던 추 부총리는 R&D 예산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증감, 사업 어디에 얼마나 더 투입될지는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국회 소위 심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뒤에 윤곽을 잡아나갈 것”이라며 “아직은 (언급하기) 이르다”고 했다.

사실 다수 전문가는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서 어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긴축에 가까울 정도로 예산을 빠듯하게 편성한 측면도 있고, 무엇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심성 ‘퍼주기’ 예산은 이미 충분히 예상된 일이다.

실제 예산 심사에 돌입하자 여당에서도 ▲노인 임플란트 건강보험 지원 확대 ▲대학생 ‘천원의 아침밥’ ▲명절 기간 ‘반값 여객선’ 등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야가 예산안 심사에 나선 지 2주 만에 이미 9조원 가까이 늘었다.

일각에서는 정부 역시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민주당은 줄곧 확장 예산 편성을 주문해 왔다. 총선을 앞둔 상황은 여야 불문하고 지역구 예산 챙기기, 포퓰리즘 예산 편성 등은 불 보듯 훤했다.

한 경제평론가는 “과연 추(경호) 부총리가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을까? 스스로가 재선 국회의원이고 총선을 앞둔 상황인데 그걸 몰랐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국회 예산 증액에 대해 원칙을 앞세워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국가재정법’에 의해 국회가 예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재부 동의가 있어야 하는 만큼 건전재정 정책을 뒤집을 수준의 증액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총액 예산이 늘어나지 않는 선에서 국회와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김완섭 기재부 제2차관은 “국회에서 정부 예산안 일부 항목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우리가 다시 한번 예산안 가운데 불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찾아서 감액하려 노력하는 중”이라며 “다만 (예산안) 전체 총액보다는 크지(늘어나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국회가 예산을 증액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우리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정책을 뒤집을 정도로 예산에 변화를 주는 내용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김 차관 발언을 뒷받침했다.

그는 “(국회)상임위에서 예산을 늘린다고 최종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여야가 예결위에서 상의하면서 조율하는 건데, 정책을 180도 바꾸는 것은 정부가 동의할 수 없다”며 “예컨대 야당 주장하는 것처럼 갑자기 증세 정책을 요구한다거나, 재정확대를 주문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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