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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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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그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광범위하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 기술이 반도체 시장은 물론 전 세계 사업에 영향을 끼치는 등 상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술 혁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일들은 사전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결심 공판에서 10분간 목 멘 목소리로 한 최후 진술로, 우리 경제가 직면한 엄중함을 그대로 옮겼다.

이미 복합위기를 예고하는 비상벨은 잇따라 울리고 있다. 본격 AI 시대를 알린 ‘챗GPT’의 출현과 팬데믹 이후 일상의 변화는 우리나라 수출 20%를 떠받치던 반도체와 최전방 산업 스마트폰·가전업체들을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올려놨다. 이스라엘-하마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화약고로 변해버린 지구촌과 미국과 중국간 경제패권을 둘러싼 갈등 심화는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리딩하지 못한다면 도태 되는 그 치열한 첨단산업 전쟁의 중심부에서 이 회장이 고군분투 중이다.

◇급변하는 패러다임, 주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1등 기업의 무게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조7423억원으로, 현대차의 11조6524억원, 기아의 9조1421억원, SK(주)의 4조6317억원의 뒤에 섰다. 14년 연속 부동의 국내 영업이익 1등 왕좌를 내준 셈이다.

50조원을 상회하던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올해 불과 7조원대로 점쳐진다. 충격적인 어닝쇼크의 배경은 한국경제의 심장 역할을 했던 반도체 산업의 추락이다. 공급과잉에 시달린 삼성 반도체 부문 올 3분기 누적적자는 12조7000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초일류’ 삼성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무너졌을 정도의 대규모 손실이다.

그렇게 삼성 반도체 위기는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20% 비중이 넘던 반도체 부진에 무역적자가 이어지자 정부와 국회에선 연중 한국경제 위기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포럼과 토론회를 끝도 없이 열었다.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갖고 있는 존재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올해에만 무려 53조7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다. 평택과 미국 테일러시에 47조5000억원에 달하는 차세대 반도체공장을, 3조1000억원을 쏟아 첨단 디스플레이 공장을 짓는다. 양산시점에 맞춘 건설 속도는 이 회장이 오롯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무게다. 이에 따라 공급과잉 여부와 판매단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 공장에서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 12%에 불과한 삼성은 점유율 60%가 넘는 TSMC와의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출하량 기준 세계 1위 스마트폰은 프리미엄 시장에서 애플과 자웅을 가리고 있다. 매출기준 애플은 시장의 43%를, 삼성은 18%를 차지한다. 핵심인 미국시장을 점유율 55%의 아이폰이 다 먹고 있어서다. 삼성은 이전엔 없던 ‘폴더블’이라는 새로운 폼팩터와 ‘실시간 AI 통역’과 같은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탑재하며 차기 시장을 노리고 있다. 완벽한 시장 분석과 맞춤형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면 도전하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다. 가전시장에서도 모든 IT 기기를 하나로 묶는 초연결 ‘스마트싱스’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시장을 넓히고 주도하는 맹주는 역시 삼성이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제공=연합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연합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판에… ‘사법리스크’에 발 묶인 이재용
미중 무역갈등은 이 회장이 가장 고민 하는 이슈 중 하나다. 반도체와 배터리사업 모두 양국의 무역제재로 사업전략을 끊임 없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갖고 있는 삼성은 첨단공정 설비의 자유로운 투자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인해 보조금 수혜를 보고 있는 배터리사업 역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원료 공급망을 탈피해야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내년 줄줄이 이어지는 세계 각국 대통령선거 등 정치 동향 역시 챙겨야 할 핵심이다. 삼성은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뿐 아니라 전방산업인 스마트폰과 가전사업까지 경기에 가장 민감한 사업이 다수 포진 해 있다. 정권에 따라 긴축과 완화, 투자 유치와 자국산업보호 정책은 급변할 수 있다. 특히 내년 11월 미국 대통령과 상원의원 선거는 모든 기업이 주목하는 빅이벤트다. 우리나라 총선 역시 내년 4월 예고 돼 있고, 반도체 경쟁국 대만의 대선과 총선, 핵심광물 대국인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의 대선·총선 등이 상반기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은 햇수로 8년째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국정농단 1심부터 파기 환송심까지 83차례 법정을 다녀갔고 106차례 열린 불법승계 의혹 관련 재판에도 95차례 출석했다. 재판 출석 횟수만 따져도 178차례에 달한다.

검찰이 5년을 구형한 이번 재판에 대한 선고는 내년 1월 26일 내려진다. 결과에 따라 항소와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진다면 3~5년은 더 이 회장이 서초 법원에 붙잡힐 수 있다. 삼성의 전략을 새로 짜야 할 정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넘쳐나지만, 이 회장은 그간 거의 매주 목요일 재판에 참석해 왔다. 해외 일정을 미루거나 서둘러 일을 마무리 하고 귀국 하는 식이다.

재계 관계자는 “어디로 튈 지 모를 글로벌 정세와 불확실성은 경영자로선 공포, 그 자체”라며 “이재용 회장이 틈 날 때마다 글로벌 사업장을 돌면서 임직원들과 토론하고 각 계 리더들과 머리를 맞대어 파악하려 애쓰는 이유”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투자 결단과 사업 수주 하나하나에 우리나라 전체 경제가 움직일 판인데, 이렇게 소모적 사법 리스크에 시달려야 한다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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