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등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식품업계의 전략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소비자단체는 이런 행태를 소비자를 기만하는 ‘꼼수’로 규정하고 대안이 필요하다며 기꺼이 매를 들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와 학계의 입장은 다르다. 정부의 과도한 가격 압박으로 생겨난 ‘풍선 효과’이기 때문에 더이상의 개입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꼼수’라는 주장, 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29개 주요 식품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9월 사이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와 원재료값 등락률을 비교한 결과를 최근 내놨다. 이중 8개 품목은 원재료값이 하락했으나 소비자 가격은 되레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슈링크플레이션’을 두고 정부-소비자단체와 업계-학계간 날선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꼼수’라는 시각은 ‘업체들의 반칙’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고, ‘풍선효과’라는 주장은 ‘정부의 제품 가격 개입이 과도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지난 10월3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케첩, 마요네즈 등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표적으로 마요네즈는 1년 새 원재료값이 22.0% 내렸으나, 소비자물가지수는 26.0% 올랐다. 식용유는 이 기간 원재료값이 27.5% 하락했으나, 소비자물가지수는 10.3% 뛰었다. 밀가루도 원재료값은 19.8% 떨어졌지만, 소비자물가지수는 6.9% 상승했다. 특히 식용유, 밀가루의 경우 출고가가 각각 11.0%, 11.1% 상승하면서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렸다.

분유·우유·고추장·된장·쌈장·햄·아이스크림 등 6개 품목은 원재료값 상승률보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더 높았다. 고추장은 원재료값이 5.7% 상승하는 사이 소비자물가지수는 23.1% 뛰었다. 우유 역시 원재료값 상승률은 3.1%지만, 소비자물가지수는 8.5% 올랐다. 아이스크림은 원재료값이 9% 상승했지만, 소비자물가지수는 14.8% 늘었다.

소비자단체는 이런 불합리한 가격 인상 외에도 제품 가격을 유지한 채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가격과 용량은 유지하되 재료비 등을 낮춰 질을 떨어뜨리는 ‘스킴플레이션’, 묶음 판매인데도 낱개 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번들플레이션’ 등의 사례를 들어 식품업계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지적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기업들이 주 원재료값 하락을 소비자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현상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원재료값 상승을 이유로 소비자 가격을 부당하게 인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기업 스스로 불합리한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가격을 정당하게 올리는 건 기업의 자유지만 정확한 근거가 없는 가격 인상이나, 소비자를 기만하고 눈속임하는 행위 등을 막는 규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업 역시 인하 요인이 있다고 가격 하락을 하진 않고 있으니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도 이러한 행위를 근절하겠다고 칼을 뽑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우유·빵·라면·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9개 품목의 물가 관리 전담자를 추가 지정하고 가격을 수시로 확인하기로 했다. 이른바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 등이 등장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27일 국내 주요 식품·유통사와 함께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며 압박에 나섰다. 소비자원은 슈링크플레이션 73개 품목(209개 가공식품)에 대한 조사를 이달 말까지 진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내달 초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의 과도한 제품가격 개입, 언제까지”

업계와 학계는 정 반대의 논지를 편다. 식품업계에 쏟아지는 질타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형태의 가격 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결국 개별 기업의 이윤 추구 방식이라는 점에서다. 정부의 지나친 가격정책 개입은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대두된 꼼수 인상 사례 역시 정부의 옥죄기가 만든 부작용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2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ESG 경영 시대이기 때문이 과도한 꼼수 가격인상은 소비자 불매 운동 등 ‘응징’을 부를 수밖에 없음을 기업들이 잘 인식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최근 정부가 개별 품목에 대한 가격까지 관리하려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격 책정은 오롯이 기업의 몫인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고 드니 슈링크플레이션 등 부작용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품목별 물가가 얼마나 변동되는지를 관리하고 간접적으로 공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일일이 개별 품목들의 가격을 통제하려 들 경우 더 큰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도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 고물가로 인한 소비 침체 등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강한 압박에 나서니 기업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어떻게든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기조에 동참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슈링크플레이션 등을) 일종의 자구책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원재료 가격과 실적 등을 근거로 비판이 나오고 있으나 억울한 면이 있다”며 “가격 인상 시기보다 원재료 가격이 떨어진 마요네즈 등의 사례가 있는 건 사실이나, 이전보다 두드러지게 낮아지진 않았다. 경영실적의 호전 역시 해외 사업에서 기인한 것이지, 내수만 살펴보면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