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법 불완전판매·보상 기준 불분명

금융위원장 “조사 결과 후 제도 보완”

이복현(왼쪽)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일 서울 을지로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이복현(왼쪽)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일 서울 을지로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항셍중국기업지수(이하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원금손실이 예상되면서 금융당국을 향한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증권사를 상대로 불완전판매 여부와 관련해 전수 조사를 벌인 후 제도 보완에 나서기로 했지만 이번에도 뒷북이라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홍콩H지수 연계 ELS와 관련해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했다는 것만으로도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설명 여부를 떠나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통상 금융당국의 조사는 손실이 확정되는 내년 이후 실시하는게 맞지만 특정 은행 등의 쏠림 현상이 있고, 사실관계를 빨리 점검하기 위해 검사에 들어깄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은행 등은) 자필 자서를 받고 녹취를 확보했다며 불완전 판매 요소가 없거나 소비자 피해 예방을 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며 “적합성 원칙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상품 판매 취지를 생각하면 자기 면피 조치를 했다는 것으로 들리는 것 같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홍콩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종목 가운데 50개 종목을 추려 산출한 지수다. 이 지수는 2021년 2월 1만2000선까지 올랐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준금리 인상 등 각종 글로벌 경제 이슈와 맞물리며 최근 절반 가량 내린 6040선에 거래되고 있다. 내년까지 지수가 30% 이상 반등하지 않으면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

홍콩H지수 연계 ELS상품은 은행권을 통해 많이 판매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잔액은 8조4000억원대다. 그러나 해당 상품 가입 시점인 2021년 대비 크게 하락한 홍콩H지수가 현 수준에 머물 경우 3조원이 넘는 규모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미래에셋·NH투자·KB·삼성증권 등 4대 증권사의 경우 2조4000억원 규모다.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은 은행 등 판매사들이 ELS를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상품인 것처럼 안내했다며 불완전판매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중에는 ELS에 잘 모르는 고령의 부모님이 ELS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볼 위기에 처했다는 사연도 잇따른다.

금융당국이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도 바로 불완전판매 여부다. 은행이 소비자에게 해상 상품 판매 시 원금손실 가능성을 안내하고 상품 위험성을 성실하게 이행했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그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불완전판매를 근거로 손실액의 최대 80%까지 금융사가 배상 책임을 질것을 권고해왔다

그러나 금융권에서 이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낸다. 금융당국이 지난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서 불거진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를 계기로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금소법 시행 이후 녹취 등을 포함해 다양한 내부통제 절차를 마련한 만큼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금소법은 금융투자상품 판매 시 6대 원칙(▲설명 의무 ▲적합성 ▲적정성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을 의무 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만 65세 이상 고령투자자와 부적합투자자에게는 모든 금융투자상품 가입 시 녹취와 숙려기간 도입을 의무화했다.

특히 홍콩H지수 연계 ELS상품은 금소법 시행 이후인 2021년 이후에 판매됐고, 당시 H지수에 대한 전망이 좋아 인기가 많았다.

중국 베이징 증권회사 객장에서 한 남성이 대형 시황판을 바라보고 있다. ⓒ베이징·AP=뉴시스 중국 베이징 증권회사 객장에서 한 남성이 대형 시황판을 바라보고 있다. ⓒ베이징·AP=뉴시스

때문에 금융당국이 전수조사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판매를 가릴 명확한 기준이나 보상의 근거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금소법은 금융상품 가입 과정에서의 위법 발견 시 5년 이내에 ‘위법계약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보상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당시 금융위원회도 관련 분쟁에 대비해 구체적인 보상 지급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은행권의 불완전판매 사실이 발각된다 하더라도 결국 금융당국을 향한 책임론으로 번질 공산이 큰 대목이다.

현재 금감원은 홍콩H지수 연계 ELS상품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불완전판매 여부 등과 관련해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다만 전수 조사 결과 발표가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인 점을 감안하면 마무리가 시점이 언제인지는 불투명하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과 관련해 “불완전판매 제도적 보완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감원에서 팩트를 확인하고 있으니 그 결과에 따라 제도적으로 무엇을 보완할 필요가 있는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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