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에서 네팔에서 온 외국인근로자들이 입국하는 모습. ⓒ뉴시스

16만 5천 명. 내년에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인력(E-9)의 규모입니다. 지난달 27일 정부 관계부처들이 정부서울청사 회의실에 모여 ‘제40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개최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관리·보호와 관련한 사안들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왔는데요. 이번 회의를 통해 ‘2024년 외국인력 도입·운용 계획안’이 통과되면서 구체적인 숫자가 정해진 것입니다.

정부는 연말마다 다음 해 계획안을 의결함으로써 외국 인력 쿼터제 규모를 유연하게 조절해왔습니다. 때로는 늘리고, 때로는 줄이면서 말이죠.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은 5만 6천 명으로 규모가 유지됐습니다. 2021년에는 5만 2천 명으로 소폭 줄었지만, 2022년 6만 9천 명으로 다시 늘었죠. 올해는 12만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내년엔 올해보다 37.5% 증가한 16만 5천으로 규모가 확정됐습니다. 이는 쿼터제 시행 이후 역대 최고치죠.

숫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제조업(9만 5천, 57.5%)입니다. 농축산업(1만 6천, 9.7%), 서비스업(1만 3천, 7.8%), 어업(1만, 6%)이 그 뒤를 이었죠. 1위 제조업-2위 농축산업이라는 순위는 바뀐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인력을 지속적으로, 또 많이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2024년 업종별 E-9 도입인원 표. ⓒ고용노동부

올해 농축산업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하위 항목으로 ‘임업’이 새로 추가됐다는 점입니다. 본래 ‘작물재배업’, ‘축산업’, ‘작물재배 및 축산 관련 서비스업’ 등 3가지 업종에서만 쿼터제가 적용됐는데요. 이제 임업 분야 중에서도 ▲임업 종묘 생산업 ▲육림업 ▲벌목업 ▲임업 관련 서비스업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약 1천 명이 임업 분야에 취직할 길이 열린 것이죠.

계획안이 확정되긴 했지만, 앞으로 1년 동안 쿼터제가 ‘고정적으로’ 운영되는 건 아닙니다. 업종별로 인원이 소진되는 속도는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어딘가는 인기가 많고, 어딘가는 썰렁할 수도 있으니까. 따라서 고용노동부는 2만 명으로 배정된 ‘탄력배정’ 인원을 업종마다 유동적으로 나눌 방침입니다. 또 필요하다면 인력이 여유로운 업종에서 인원을 빼 다른 업종으로 배분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이들은 ‘고용허가제 한국어 능력시험(EPS-TOPIK)’이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EPS-TOPIK 홈페이지

이처럼 해외 인력들이 국내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고용허가제’라고 합니다. 그 중 외국 인력 쿼터제가 적용되는 건 ‘일반고용허가제’인데요. 물론 외국인들이 이 허가제를 통해 ‘비전문취업사증(E-9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고용노동부·법무부가 주관하는 ‘고용허가제 한국어 능력시험(EPS-TOPIK)’을 통과하고, 금고형 이상의 범죄 경력이 없어야 하죠. 또 정부에서 정한 취업교육도 이수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은 인력송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아래 16개 국가에 한해 E-9 비자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네팔 △동티모르 △라오스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중국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등입니다.

법무부는 부족한 농가 일손을 충원하기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제’를 운영하고 있다. ⓒ법무부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농어촌 지역에서도 일손이 부족한 농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계절근로자’ 제도를 적극 이용 중인데요. 이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고용허가제의 E-9 비자를 발급받은 인원일까요? 우선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다 같은 외국인 근로자 아닌가, 싶으실 텐데요.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고용허가제가 아닌 ‘외국인 계절근로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죠.

2015년부터 법무부는 파종·수확기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제를 도입했습니다. 이후 2019년 12월 근로자들의 노동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 장기체류자격(E-8)’을 신설했죠. 인원의 규모는 법무부·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를 포함한 5개 부처가 주관하는 ‘배정심사협의회’에서 결정됩니다.

1년에 2번 열리는 이 협의회에서 계절근로자의 전체 인원이 정해집니다. 그 후 지자체별로 인원이 할당되죠. 지자체들은 정해진 인원에 따라 해외 지자체들과 접촉해 인원을 모집하게 됩니다. 이렇게 들어온 계절근로자들은 본래 5개월까지만 일할 수 있었는데요.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농가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2023년 5월부터는 ‘기존 5개월+1회 3개월 연장’을 통해 체류 기간이 총 8개월로 늘어났습니다.

협의회에서 정해지는 계절근로자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상반기 1만 2천330명, 하반기 7천388명으로 도합 1만 9천718명이 전국에 배정됐는데요. 2023년 상반기에는 2022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배 많은 2만 6천788명이 책정됐습니다. 지난 5월 24일에는 상반기 인원과 별개로, 1만 2천869명을 추가 배정한 바 있습니다. 고용허가제 E-9 비자와 발맞춰, E-8 계절근로자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죠.

나주시에서 시행한 계절근로자 사업은 농가들의 만족을 이끌어냈다. ⓒ나주시청

계절근로자 확대의 가장 큰 이점은 ‘경제적 효과’입니다. 농촌 인건비는 ‘부르는 게 값이다’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인력이 부족하면 필연적으로 노동시장에 남은 근로자들의 가치가 높아지게 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하루하루 일이 급한 농가들은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죠. 정부·지자체가 외국인 근로자 비중을 확대하는 이유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낮추는 전략이죠.

실제로 계절근로자 공급의 확대는 인건비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주시엔 올해 316명의 계절근로자가 입국해 농가에 힘을 보탰는데요. 이와 함께 지자체가 인력지원 정책·조례 제정을 병행함으로써 농번기 평균 일당을 14만 원에서 11~12만 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농민들의 높은 만족도는 덤이죠. 지난 9월 나주시는 계절근로자 사업에 참여한 농가들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시행했는데요. 그 결과 45농가 중 84%가 만족, 93%가 지속적인 고용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사업에 대한 농가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지자체들은 계절근로자 유치를 위해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거나, 계절근로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기숙사를 건립하는 식이죠. 심지어 전북연구원에서는 성실하게 일한 계절근로자의 체류자격을 E-8에서 E-9로 전환해 주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오고 싶은’ 지자체를 만드는 것이 계절근로자 유치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이죠. 외국인 근로자와 농어촌의 상생은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현실입니다.

베트남 남딘성에서 온 외국인 공공형 계절노동자들이 제주도 감귤 수확 실습현장으로 향하는 모습. ⓒ뉴시스

다만 문제점은 남아있습니다. 계절근로자들의 입국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이탈자도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죠. 지난 10월 4일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은 법무부로부터 전달받은 자료를 공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작업지를 무단이탈한 계절근로자는 총 1천818명입니다. 2018년 100명, 2019년 57명에 이어 2021년 316명, 2022년 1천151명으로 근 2년간 이탈자 수는 가파르게 상승했죠.

브로커의 농간으로 수수료를 떼이다 보니 농가 대신 더 많은 값을 쳐주는 공사현장으로 떠나기도 합니다. 예상한 것보다 일이 너무 힘들어 도망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합니다. 계절근로자들을 살피는 인원이 충분했다면 이들의 이탈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죠. 법무부·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9월 계절근로자 유치·관리 업무 전반을 대행할 전문기관을 지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양’만큼 중요한 것은 ‘질’이죠. 근로자들이 브로커나 불법체류 같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한국·해외에서의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입국 이후에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재입국·재고용 비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방책이 필요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의 정신이 향후 외국 인력 정책에서도 십분 발휘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농부 인턴 유승재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동아일보, <“9명중 4명 사라져” 농번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이탈 비상>

한국농어민신문, <“성실 계절근로자, 고용허가제 비자 전환을”>

헤럴드경제, <의성군, 2023년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 마무리…256명 출국 완료>

연합뉴스, <내년 외국인력 쿼터 12만명 이상으로…사업장별 고용한도 2배 늘린다>

한겨레,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인력 38% 확대…업종 범위도 넓혀>

한국일보, <활개 치는 불법 브로커, 반복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무단이탈>

정보통신신문, <‘E-9’ ‘H-2’ 비자로 입국 후 3년간 한국에서 취업 가능>

축산신문, <5년간 무단 이탈한 외국인 계절근로자 1천818명 달해>

매일경제, <“외국인 계절근로자 무단이탈 작년 1천명 넘어…방지대책 필요”>

농민신문, <임업분야, 내년에 외국인 근로자 1000명 최초 도입>

농민신문, <수요 많은 계절근로…경남 필요인원 2.5배 껑충>

농민신문, <[사설] 외국인 계절근로자 장기체류 방안 필요하다>

조선일보, <내년 외국인 근로자 역대 최대 16만5000명...식당서도 일한다>

안전신문, <나주시, 외국인 계절근로자 효과 ‘톡톡’>

나주시청 보도자료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법무부 보도자료

외국인 고용 관리시스템(EPS)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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