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김희연 씨(54‧가명)는 요즘 장바구니를 들 일이 없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 앱으로 과일들을 고르는 게 새로운 취미다. 그는 “휴대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배달이 오는 만큼 장을 보러 시장이나 대형마트를 갈 필요가 없다”며 “채소를 배달 시킬 때도 많은데 상품 질이 나쁘지 않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이 지난 11월 30일 문을 열었다.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구매자가 직거래하는 시스템이다. 유통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가 등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매가 끝난 오전 즈음이었지만 가락시장 내 경매장은 분주했다. ©더농부

더농부가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을 둘러보고, 도소매상들을 만나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대세는 온라인…

유통 절차 간소화도 강점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지난달 개장한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은 중간 도매 과정을 확 줄였다.

온라인 농식품 도매시장을 통한 농산물 유통 과정©온라인 농식품 도매시장

온라인이라는 강점을 최대한 살려 시간과 지역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전국 어디서든 24시간 영업이 가능하다.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의 청과 부류 위탁 수수료는 최대 5%에 불과하다. 이는 기존 온라인 도매시장이 부과하던 7%보다 낮은 수치다. 플랫폼 사용료도 0.3%로 서울 가락시장(0.55%)에 비해 저렴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파일럿 운용 기간(10월16~11월10일) 동안 출하·도매 단계 비용은 오프라인 거래 대비 7.4% 낮아졌고, 농가 수취 가격은 4.1% 높아졌다.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 홈페이지엔 최근 일주일간의 평균 거래 물량과 평균 판매 금액, 상위 거래 품목이 나와있다. ©온라인 농식품 도매시장

현재 거래 물량은 어느 수준일까. 거래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주말(12월2~3일)을 제외하고 최근 일주일 평균 거래 물량(12/5 기준)은 17.4t, 평균 판매 금액은 4178만 원이었다.

상위 거래 품목으로는 감귤이 31%(26t)를 차지했다. 그 뒤를 양파 27.4%(23t), 쌀 16.7%(14t) 등이 이었다.

백종원 대표가 운영하는 ㈜더본코리아가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 1호 매수를 기록했다. 더본코리아는 자사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해 10t 가량의 양파를 전남서남부채소농협에서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오프라인…

내 눈으로 보고 산다?

오프라인 구매를 선호하는 소비자 및 도소매상들도 여전히 많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내 한 도매・소매점에 다양한 과일들이 판매 중이다. ©더농부

가락시장 청과점에서 만난 이들 중에선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들이 많았다. 소매상들은 아직 농산물 구매 시 오프라인 거래를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가락시장 내 도・소매 상인 A 씨는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은 홍보물이 붙어있는 거만 봤다”며 “나이도 들고 경매 방식이 익숙해 온라인은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도매상인 B 씨는 “여러 지역에서 오는 걸 경매로 사는 방식이 편하다”라며 “우리도 물건 파는 입장인데 눈으로 보면서 좋은 상품을 골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경기 하남시의 한 소매 청과점에 사과와 귤이 진열돼 있다. ©더농부

경기 하남시의 청과 소매상 C 씨는 “매장 규모가 작아 직접 보고 과일을 골라오지 않으면 손님 유지가 되지 않는다”며 “직접 아침마다 가락시장에서 (과일을) 보고 골라와야 손님들도 신뢰를 가지고 우리 가게를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으로 과일을 사지 않는 노인층이 주요 고객층”이라며 “유통과정상 도매상에게 사는 금액이 붙지만 (직접 오는 손님들은) 과일 상태에 예민하기 때문에 가락시장 내 오프라인 도매점을 거래처로 이용한다”고 했다.

또 다른 경기 하남시 청과 소매상 D 씨는 “마트처럼 큰 곳은 온라인으로 대량 구매를 이용해 (과일을) 사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우리처럼 작은 소매상은 가락시장에서 도매상에게 (과일을) 직접 가져오는 게 영업 방식 상 더 맞다”고 답했다.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엔 상품들이 나와있었지만 kg당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온라인 농식품 도매시장

온라인에선 그램 당 얼마인지 가격을 제대로 비교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온라인은 단위 가격 표시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 홈페이지에서도 당근 20kg에 4만 4천 원, 양파는 12kg에 1만 3천 원 및 15kg에 1만 9천 원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kg당 가격을 비교하기 힘들었다.

넘어야 할 산 많아…

완전히 자리 잡기까진 시간 걸릴 것

농식품부는 2027년까지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 규모를 3조 7000억 원까지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엔 넘어야 할 난관들이 많다.

무엇보다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을 뒷받침해 주는 법적 근거가 아직까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국회와 농식품부에 따르면 ‘농산물 온라인 도매거래 촉진에 관한 법률’은 아직까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은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의 존재 근거가 되는 법이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을 포함한 참석자들이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 장면을 보고 있다. ©뉴시스

현재는 특례 사업으로 인정돼 예외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규제샌드박스’의 만료 기한인 4년이 지나기 전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일반인들은 회원가입을 하지 못해 사이트 전체 메뉴를 볼 수 없었다. 회원가입을 하려면 무조건 사업자 번호, 업태, 물류 거점 정보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aT 관계자는 “아직까진 연 50억 이상의 생산자 단체 및 법인들을 상대로만 거래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어떤 농가들은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도매상이 유통 과정에서 가격을 조정해 주는 경우도 있다”며 “온라인의 경우 이런 과정이 생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희 교수는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은 탈중개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소비자들과 소매상들이 모든 판매자들을 알 수 없다는 입장에서 도매상은 어느정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일부 도매상들의 횡포를 어떻게 막냐가 향후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을 포함 탈중개화, 재중개화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더농부 인턴 양정민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한국경제, <"한국이 세계 최초"…파격 실험 나서는 '온라인 가락시장'>

문화일보, <한국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 세계 첫 출범… 거래 1호는 백종원>

SBS, <세계 첫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 출범…"2027년 3조 7천억 원 규모">

한국농어민신문,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 출발선에 섰는데…법적 기반은 여전히 국회 표류>

머니투데이, <농산물 유통구조 판이 바뀐다...디지털로 무장한 온라인도매시장 출범>

이데일리, <유통비용 확 줄인 '온라인 도매시장'으로 농산물값 잡는다>

뉴시스, <온라인에 문연 또 하나의 가락시장…유통마진 '뚝' 농가소득 '쑥'>

서울경제, <온라인 도매시장 출범했는데…관련법은 국회서 '낮잠'>

연합뉴스, <"10g당 얼마지?"…온라인에선 가격 비교 어렵다>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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