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슈퍼 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이 R&D(연구·개발)센터 운영 파트너로 삼성전자를 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여러 차례 방문하며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해 온 데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도 더해지며 거둔 성과다. 이번 일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1위인 대만 TSMC를 추격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에이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ASML CEO와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2일(현지시간) ASML과 공동으로 7억 유로(약 1조원)을 투자해 내년부터 한국 화성에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R&D센터를 설립한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윤 대통령과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자리한 가운데 ASML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MOU 체결식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사장과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했다.

ASML이 반도체 제조기업과 해외에 최초로 설립하는 R&D 센터는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인 극자외선(EUV)을 기반으로 초미세 제조 공정을 공동 개발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ASML이 각자 이곳에 얼마나 투자할 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ASML이 삼성전자를 택한 것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국가인 한국에 투자를 하는 것이 차세대 노광 기술 확보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 일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EUV 장비 확보는 물론 최첨단 공정 개발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가 그간 D램 시장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여준 것도 ASML이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0년 3월 업계 최초로 D램에 EUV를 처음 적용한 데 이어 2021년 11월 업계 최초로 LPDDR5X D램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또 2021년 10월에는 업계 최선단 14나노 EUV DDR5 D램을 양산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업계 최초 LPDDR5X D램을 선보였다. 2022년 7월에는 업계 최고 속도인 GDDR6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올해 5월에는 업계 최선단 12나노급 D램 양산, 지난 9월에는 현존 최대 용량 32Gb DDR5 D램 개발까지 성공하며 기술 초격차를 실현했다.

ASML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도 도움이 됐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구현을 위해선 EUV 기술 확보가 핵심이라는 판단에 따라 2000년대부터 ASML과 초미세 반도체 공정 기술과 장비 개발 협력을 지속했다. 또 2012년에는 ASML 지분 투자를 통해 파트너십도 강화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ASML 지분 3%를 7000억원에 매입한 뒤 일부를 매각해 현재 0.4%(158만407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도 이번에 도움이 됐다. 이 회장은 그간 여러 차례 피터 베닝크 CEO와 만나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 베닝크 CEO는 지난해 방한 당시 이 회장에 대해 “수년간 교류하고 만나며 친분을 쌓았다”며 “비즈니스·사업환경·개인사 등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경기도 화성시 송동에서 김동연 경지도지사와 정명근 화성시장, 피터 베닝크 ASML CEO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ASML 화성 반도체클러스터 기공식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도청 ]

ASML의 한국 투자 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ASML은 현재 경기도 화성에 2400억원을 들여 반도체 클러스터 ‘뉴 캠퍼스’를 짓고 있다. 이곳은 2024년 완공 예정으로, 로컬리페어센터(LRC·재제조센터), 트레이닝센터, 체험관 등이 들어선다.

LRC는 고장 나거나 성능이 떨어진 부품으로 새로운 장비를 만드는 시설이다. ASML은 향후 국내 중소기업과 협력을 확대해 현재 10%대인 국산 수리부품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리고, 부품 수급 기간을 단축할 계획이다. 트레이닝센터에선 심자외선(DUV)·EUV 노광장비와 부품 등의 첨단기술을 교육한다.

업계에선 이번 공동 연구소 건립으로 하이 NA EUV 등 차세대 노광장비 개발에 대한 국내 생태계 조성과 성장에도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이 NA EUV 장비는 렌즈 개구수(빛을 모으는 능력의 단위)를 기존 장비의 0.33에서 0.55로 키운 것이 특징이다.

ASML은 R&D용 하이 NA EUV 장비를 연내 처음 출하할 계획이다. 2나노 이하 공정에 사용할 경우 기존 장비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나, 연간 생산 대수가 10대 안팎이란 점에서 업체 간 장비 확보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대량 생산은 2025년께로, 첫 고객은 6대 선주문을 넣은 인텔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ASML과 협업을 강화하는 만큼 하이 NA EUV 장비 확보에도 이점이 있을 것”이라며 “국내 설비소재 협력사의 성장과 반도체 인재 육성에도 기여할 뿐 아니라 이는 국가 반도체 경쟁력 확보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왼쪽)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오른쪽)와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도 이번 MOU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를 통해 최첨단 메모리 개발에 필요한 차세대 EUV 양산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1993년부터 30년간 지켜 온 글로벌 메모리 1위의 위상을 굳건히 지켜나간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TSMC와의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57.9%, 삼성전자는 12.4%를 차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나노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인텔이 TSMC와 격차를 좁힐 기회가 있다고 봤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공동 연구소 설립을 통해 차세대 노광 장비를 조기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이라며 “생산 비중도 확대해 메모리 미세공정 혁신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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