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깡통시장 인간적 매력에 전 국민 열광

모든 정권에서 해외 순방, 국내 이슈마다 꺼내 드는 ‘전가의 보도’

정작 ‘이재용의 시간’은 사법 리스크로 상당부분 소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여러 모습. 왼쪽부터 부산 깡통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이재용. 한-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협력 협약식에 윤석열 대통령 및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한 이재용. '삼성 부당합병 의혹'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온라인 커뮤니티/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여러 모습. 왼쪽부터 부산 깡통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이재용. 한-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협력 협약식에 윤석열 대통령 및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한 이재용. ‘삼성 부당합병 의혹’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온라인 커뮤니티/뉴시스

지난 열흘간 ‘이재용’이라는 이름 석 자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6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 방문에 동행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부산 깡통시장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시민에게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분식집 ‘이모님’에게 어묵국물을 더 달라고 하는 등 소탈한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회장의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다양한 ‘짤’로 만들어지고, 그가 방문한 분식집이 대박이 났다는 등 ‘이재용 in 부산’ 열풍은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2일에는 또 다른 지역에서 이 회장이 화제의 중심이 됐다. 역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한 자리로,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방문에 동행해 반도체 업계 ‘슈퍼 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공동으로 한국에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R&D센터’를 건립키로 하는 성과를 안고 귀국했다.

앞서 지난달 대통령 영국 국빈방문과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을 위한 프랑스 현지 일정까지 더해 윤 대통령 일정에 이재용이라는 이름이 겹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바쁜 사람을 왜 자꾸 불러 대느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1일 “대기업 총수들을 동원해 시장에서 떡볶이 먹방을 한 지 며칠이 지났다고 또 기업인들을 데리고 해외로 떠나느냐”면서 “오죽하면 해외순방을 비롯한 대통령의 잦은 호출로 기업에서 ‘일하지 못하겠다’고 고충을 토로하겠느냐”고 비난했다.

사실 대통령의 국내외 주요 일정에 대기업 총수들이 함께 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해외 순방의 경우 현지에서 투자나 사업제휴 등경제 협력의 성과물들을 내놓으면서 양국간 우호관계를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해외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우리 정부를 등에 업고 현지 정부로부터 정책적 지원이나 행정 편의 등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다.

민주당 정권, 즉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도 해외 순방 때 대기업 총수들로 경제사절단을 동행토록 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심지어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조차 문 대통령은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총수들을 동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회장이 2018년 9월 18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회장이 2018년 9월 18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국내에서 경제 관련 이슈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고용확대 정책을 부각시킬 때나,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 발표,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 심지어 코로나19 관련 방역물품 생산 확대나 백신 확보까지 이 회장을 선봉으로 내세웠다.

물론 올해 들어서만 이재용 회장이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일곱 차례나 따라나선 것은 다소 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전 정권 사람들이 ‘이재용 활용의 빈도’를 놓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도 여야,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견해가 일치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이재용이라는 인물의 가치’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의 총수라는 지위건, 경영자로서의 능력이건, 인간적인 매력이건 간에 그에게는 화제를 모으는 힘이 있다. 이재용이 등장하는 곳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화제의 중심이 된다.

‘이재용 활용의 빈도’가 논란이 될 정도니, 그의 존재가 정부로서는 전가의 보도이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자산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글로벌 시장에서 초일류 기업들과 경쟁하는 삼성을 이끄는 경영자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한 채 ‘나랏일’에만 매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영자라는 본업에 큰 지장을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 국가적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배분이 필요해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1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1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삼성의 총수와 국가적 자산의 역할로 쪼개 쓰기에도 부족한 ‘이재용의 시간’ 중 상당수가 법정에서 소모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9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이후 3년 2개월여 동안 이 회장이 법원에 출석한 날은 95일에 달한다. 재판 준비 등에 필요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사법 리스크로 소모된 시간은 몇 곱절이다.

이 사안에 대한 1심 재판은 지난달 17일 결심 공판과 함께 종결됐다. 내년 1월 26일 1심 선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봐야겠지만 검찰이 항소할 경우 또다시 기나긴 재판이 이어진다. 1심 재판에 걸린 시간을 감안하면, 대법원 판결까지 갈 경우 3~4년이 더 소요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 회장은 결심 공판 당시 “저에게는 기업가로서 지속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창출하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책무가 있다. 초일류 기업과 경쟁·협업하며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배구조를 더욱 선진화하는 경영, 소액 주주에 대한 존중, 성숙한 노사 관계를 정착시켜야 하는 새로운 사명도 주어져 있다”며 경영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것을 호소했다.

이 회장은 2016년 말 국정농단 사건부터 시작해 7년간 이어진 수사와 재판에 묶여 있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묶여 있어야 할지 모른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의 총수이자 모두가 인정하는 국가적 자산을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소모해야 할 것인가. ‘슬기로운 이재용 활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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