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후(오른쪽)에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저지를 입히고 있는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사장.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 이정후(오른쪽)에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저지를 입히고 있는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사장.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스포티비뉴스=윤욱재 기자] “좋은 구단에 가서 축하한다”

비록 같은 팀에서 뛰지는 못하지만 자주 만날 수는 있다. 키움 히어로즈 시절 동료였던 ‘바람의 손자’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어썸킴’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이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맞대결을 하는 사이가 됐다.

올해까지 키움에서 뛰었던 이정후는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고 마침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손을 잡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에게 계약 기간 6년에 총액 1억 13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안겼다. 여기에 4년 뒤 옵트아웃을 실행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했다.

이로써 이정후는 아시아 야수 역사상 포스팅 진출 최고액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 레드삭스와 5년 9000만 달러에 계약했던 일본인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의 기록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이다.

사실 현지 언론에서도 최대 9000만 달러까지 예상액이 나왔을 만큼 이정후가 1억 달러 이상 계약을 맺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이정후가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슈퍼스타’ 영입에 목말랐던 샌프란시스코의 입장도 있지만 앞서 김하성이 “KBO 리그 출신 타자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는 검증을 마친 것 또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김하성의 성공으로 이정후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는 의미다.

김하성도 이정후와 마찬가지로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2020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에 나선 김하성은 샌디에이고와 4+1년 총액 3900만 달러에 도장을 찍었다. 주전과 백업을 오갔던 2021시즌에는 117경기에서 타율 .202 8홈런 34타점 6도루로 고전한 김하성은 지난 해 붙박이 유격수로 150경기에 출전, 타율 .251 11홈런 59터점 12도루로 한층 발전된 타격 지표를 보여줬고 올해는 주전 2루수로 뛰면서 152경기에 나와 타율 .260 17홈런 60타점 38도루를 기록하며 리그를 주름 잡는 정상급 내야수로 성장했다. 여기에 뛰어난 수비 능력으로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까지 수상, 김하성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김하성은 메이저리그 입성 후 산전수전을 겪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김하성의 ‘경험’은 이정후에게도 좋은 교재이자 본보기가 될 것이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는 나란히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소속된 만큼 두 선수는 자주 만날 수밖에 없다. 양팀은 내년에도 14차례 맞대결을 펼친다. 이정후는 고비 때마다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점에서 적응 속도를 키울 수 있다.

▲ 이정후가 야구공에 사인을 하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 이정후가 야구공에 사인을 하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 이정후(왼쪽)와 김하성이 KBO 리그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 곽혜미 기자
▲ 이정후(왼쪽)와 김하성이 KBO 리그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 곽혜미 기자

이정후도 김하성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이정후는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입단 기자회견에서 “(김)하성이 형과 맞대결을 하게 돼 신기하고 설렌다”라고 말했다.

“(김)하성이 형은 한국에서 팀메이트로 뛰었고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정신적 지주가 됐던 형이다. 형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좋은 말을 해줘서 나도 이렇게 큰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라는 이정후는 “앞으로 맞대결을 많이 할 것이다. 함께 뛰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맞대결을 하게 돼 신기하고 설렌다. 앞으로 많은 것을 물어봐야 할 것 같다”라고 기대했다.

김하성은 “좋은 구단에 가서 축하한다”라고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입단을 축하하면서 “좋은 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하게 돼 잘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해까지 샌디에이고를 지휘했던 밥 멜빈 감독이 공교롭게도 샌프란시스코의 새 사령탑으로 임명된 것이다.

멜빈 감독은 김하성이 풀타임 주전 선수로 도약하는데 믿음을 아끼지 않았던 지도자다. 올 시즌 중에도 김하성의 타격감이 서서히 올라오자 그를 과감히 1번타자로 기용해 꽃을 피우게 했다. 누구보다 멜빈 감독의 성향을 잘 아는 김하성이기에 이정후에게도 ‘생생한 조언’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멜빈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만 감독으로 20년을 지낸 베테랑 사령탑이다. 2003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감독직을 시작해 2005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11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거쳐 2022년 샌디에이고에서 감독직을 맡았다. 지난 해 89승 73패(승률 .549)를 기록하며 샌디에이고를 포스트시즌 무대로 이끌었던 멜빈 감독은 디비전시리즈에서 ‘거함’ LA 다저스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82승 80패(승률 .506)로 지구 3위에 머무르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통산 성적은 1517승 1425패(승률 .516). 월드시리즈 우승 경력은 없지만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를 통틀어 감독상만 3회 수상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 김하성 ⓒ곽혜미 기자
▲ 김하성 ⓒ곽혜미 기자

▲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신임 감독 ⓒ연합뉴스/AP
▲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신임 감독 ⓒ연합뉴스/AP

마침 샌프란시스코는 ‘대변혁’을 꿈꾸고 있다. 올 시즌 79승 83패(승률 .488)로 지구 4위에 그쳤던 샌프란시스코는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2014년 이후 9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은 단 두 차례 밖에 진출하지 못할 만큼 ‘짝수 해의 최강자’의 면모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베테랑인 멜빈 감독 영입을 시작으로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 영입전에 뛰어들 만큼 이번 오프시즌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결국 오타니 영입전은 쓰디쓴 패배로 끝났지만 이정후와 손을 잡은 것을 시작으로 추가 보강 계획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샌프란시스코가 추가 전력보강에 성공한다면 멜빈 감독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꿈꿀 수 있다. 앞서 애런 저지에 3억 6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제시했던 팀이고 메디컬 문제로 입단이 좌절된 카를로스 코레아에게도 3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려 했던 팀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정후에게도 희소식이라 할 수 있다.

이미 김하성이 이정후에게 멜빈 감독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을 해준 것은 아닐까. 이정후는 “안 그래도 하성이 형이 ‘좋은 구단에 가서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셨고 또 ‘좋은 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하게 돼 잘 됐다’고 말씀해주셨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라고 밝혔다. 

KBO 리그 출신 야수의 성공 사례가 없어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했던 김하성과 달리 이정후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기 전부터 김하성으로부터 ‘알짜 정보’를 습득하면서 더 빠른 적응을 기대할 수 있다. 현지 언론에서는 벌써 이정후를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1번타자로 거론하고 있다.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사장은 “이정후는 매일 출전하는 중견수”라고 공언했다.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출발했던 김하성과 시작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이정후는 내년 데뷔 첫 시즌부터 KBO 리그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이어갈 수 있을까. 김하성이 ‘어썸킴’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샌디에이고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처럼 이정후도 샌프란시스코 팬들을 홀릴 수 있는 매력은 분명 가지고 있다. 내년 시즌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와 김하성의 샌디에이고는 한국시간으로 4월 6일 샌프란시스코의 홈 구장인 오라클파크에서 첫 맞대결을 펼친다. 김하성은 서울에서 열리는 다저스와의 개막 시리즈 일정을 소화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다.

▲ 이정후 ⓒ곽혜미 기자
▲ 이정후 ⓒ곽혜미 기자

▲ 김하성
▲ 김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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